매일신문

[이야기 속으로] 봄비-할머니가 주신 비닐우의의 따뜻한 느낌

구석진 곳에서 부시럭거리시던 할머니는 우리가 인사를 해도 못 알아채셨다. 우리 그림자가 햇빛에 이끌려 할머니 앞에 나타나자 그제서야 고개를 드셨다.

차곡차곡 짐을 유모차에 실은 뒤 끈으로 이리저리 묶은 할머니는 집에 가 있으라면서 열쇠를 던져주시고는 힘겹게 유모차를 밀고 가셨다. 뒷자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곧장 집으로 들어가기엔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할머니 가던 길로 뛰었다. "할머니, 공원에서 꽃구경하고 계세요. 제가 다녀올게요."

할머니는 사양하셨지만 결국 내가 유모차를 밀고 자원센터로 갔다. 몇 번이나 당겼다 밀었다를 반복하면서 겨우 도착해 짐을 내리는데 갑자기 비가 떨어진다. 서둘러 파지 값 계산을 하고 유모차를 밀고 다시 뛰다시피 하는데 할머니가 내 앞에 나타나셨다. "비 맞았제" 하시며 거친 숨을 몰아쉬시던 할머니 손에는 비닐우의가 들려 있었다.

비닐우의를 입은 때문일까? 따스해지니 발걸음마저 느릿해졌다. 그때 할머니는 하늘을 쳐다보시면서 "봐라,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 옷 젖으면 뭐 입고 집에 가노. 내일 학교 안 가면 자고 가면 되지만 자고 갈 수도 없고…"라고 하셨다. 그제서야 파지 판 돈이 얼마인지 주머니에서 꺼내 세어봤다. 4천120원. 앞이 안 보이도록 싣고 갔는데도 받은 돈은 너무 적었다.

파지 값이 하락해 재미가 없다는 할머니는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라면서 한사코 돈을 받지 않으셨다. 나도 할머니께서 힘들게 번 돈을 냉큼 받아 쓰기에 양심에 가책이 되어 TV 위에 숨겨두고 집에 왔다.

한명옥(대구 북구 복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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