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메디시티 대구 의료 100년] 조선인은 열등한 민족?

日, 열등의식 심으려 체력장·혈액검사 실시

▲일제가 일으킨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은 의료계마저 전쟁의 포로로 만들었다. 사진은 1930년대 대구의학전문학교 수업 장면. 1940년대로 접어들며 전쟁이 본격화하자 학생들은 머리를 빡빡 깎고 건설 공사장에 동원되기도 했다. 경북대병원 제공
▲일제가 일으킨 만주사변,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은 의료계마저 전쟁의 포로로 만들었다. 사진은 1930년대 대구의학전문학교 수업 장면. 1940년대로 접어들며 전쟁이 본격화하자 학생들은 머리를 빡빡 깎고 건설 공사장에 동원되기도 했다. 경북대병원 제공

대구의학전문학교의 경우, 교과과정 속에 교련교육이 포함돼 검열이 시작됐고 야외방공훈련·야영훈련 등도 차츰 확대됐다. 이때 체력 검정도 실시됐는데 지금껏 남아있는 '체력장'(體力章)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중고교생들의 기초 체력을 측정하는 검사인 체력장은 원래 체력검사 기준에 통과한 이들에게 준 기념 배지를 일컫는 말이었다. 조선총독부 학무국은 1939년부터 지역별 청년단을 중심으로 청년층 체력 조사에 나섰고, 달리기·멀리뛰기·던지기·물건 나르기·매달리기 등 5개 항목에 걸쳐 100만 명에 이르는 학생들의 체력을 검사했다. 1939년 7월 16일 청년훈련소에 입소한 15~25세 청년 550여 명을 대상으로 조선에서 첫 체력 검정이 실시됐는데, 여기에 합격한 청년들에게 '경성부'마크가 찍힌 배지(체력장)를 달아주었다.

1941년 총독부 산하에 후생국을 신설한 일제는 그해 7월 '국민우생법'을 제정했다. 정신병·정신박약·기형 등을 유전적인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고 규정하고, 이런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강제로 '단종수술', 즉 정관 수술 대상자로 분류했다. 앞서 '나환자들의 시련' 편에서 살펴봤듯이 실제로 소록도 자혜의원에서는 임의로 단종수술이 실시되기도 했다.

일제는 혈액형 조사를 통해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유전적으로 우월하다는 억지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한림대 일본학연구소 정준영 교수가 올해 대한의사(醫史) 학회지에 투고한 논문에 따르면, 일제강점하 의료진들이 식민지 역사관을 만들기 위해 1920년대부터 조선인에 대한 혈액형 분류 연구에 집착했으며 이를 통해 조선인들에게 열등의식을 심었다는 것.

당시 의료진들은 대규모 조선인을 대상으로 처음 이뤄진 ABO식 혈액형 분류 연구 결과를 1922년 7월 '동경의사신지'(東京醫事新誌)에 발표했는데, 대상은 조선총독부의원 외래환자와 병원 직원, 경성감옥 수감자 등 조선 내 일본인 502명과 조선인 1천167명이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억지이지만 진화한 민족일수록 A형이 B형보다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런 주장은 독일 학자인 힐슈펠트(Ludwick Hirschfeld)가 1919년 발표한 '인종별 혈액의 혈청학적 차이'라는 조사결과에 따른 것. 힐슈펠트는 진화한 민족일수록 B형보다 A형이 많다며 '인종계수'라는 수치를 만들었다. 인종계수는 유럽인들이 높았고, 유색인종과 식민지 민족은 낮았다. 이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 등 '인종 청소'의 근거로 쓰이기도 했다.

조선에 사는 일본인의 인종계수는 중간쯤이었고, 조선인은 낮았다. 그나마 전라도 쪽의 인종계수가 높은 편이었는데, 당시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조선 남부와 일본의 유사성을 내세우며 '일선동조'의 근거로 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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