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성폭행 피해자 고통 알리려 무대에 섰죠"…'미수다' 연극배우 라리사

우크라서 아픈 과거 재구성 '개인교수-노랑나비' 대구 공연

"다시는 여성이 범죄를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29일 오후 3시 대구 수성구 연호동 대구 메트로아트센터. 사람들로 꽉 찬 200석 규모의 소극장 무대에 한 외국인 여성이 섰다. 잠시 후 몇 분간의 묵념이 이어졌다. 여성은 TV 방송프로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한 우크라이나 출신 연극배우 라리사(30'사진) 씨. 라리사 씨는 이달 24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메트로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연극 '개인교수-노랑나비'의 여주인공이다. 라리사 씨는 택시를 탄 여대생 A(22) 씨가 숨졌다는 소식을 접한 다음 날인 28일부터 연극 시작 전 고인에 대한 묵념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

연극은 한 남성이 여성을 납치한 뒤 성폭행한다는 내용으로, 라리사 씨가 10년 전 실제 겪었던 일을 재구성했다. 라리사 씨는 27일 대구 여대생의 실종'피살 소식을 듣고 밤새 잠들지 못했다고 했다. 10년 전 그날 일이 떠올라서다.

라리사 씨는 지난 2003년 여름 어느 날 새벽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술을 마신 뒤 혼자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뒤에서 한 남성이 라리사 씨의 입을 막았고 그 후 기억이 끊겼다. 눈을 떴을 땐 캄캄한 지하실에 옷이 벗겨지고 손이 묶인 채 누워 있었다. 그녀 앞에는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성이 서 있었다. 이 남성은 4일 동안 그를 성폭행하고 저항하지 못하도록 마구 때렸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라리사 씨는 결국 쓰러졌고, 일어났을 땐 어느 호텔에 혼자 누워 있었다.

"10년 전 저는 경주에서 숨진 채 발견된 여대생과 같은 또래였습니다. 그날 남성에게 구금'성폭행당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합니다. 숨진 여대생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라리사 씨는 러시아에서의 아픈 기억이 채 아물기도 전 한국에서 또 한 차례 성폭행의 위험에 처했다. 3년 전 숙소에서 혼자 잠을 자고 있는데 이상한 소리에 눈을 떠 보니 라리사 씨의 앞에서 한 남성이 이상한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자 남성은 그녀의 속옷을 들고 도망갔다. 이후 그녀는 항상 성폭행으로 인한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연극은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시작했다. 연극의 마지막은 '여성들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달라'는 내용의 퍼포먼스를 직접 펼치며 마무리한다.

라리사 씨는 "성폭행 피해 여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지를 알리고 싶어서 선뜻 공연에 나섰다"며 "공연을 준비하면서 옛 기억이 떠올라 힘들었지만 이번 공연을 계기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아동이나 여성들이 범죄 피해자가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했다.

신선화기자 freshgir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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