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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학의 시와 함께] 갈 수 없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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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수 없는 나라 -윤희상(1961~)

자고 일어나 방 문을 열면 감나무 밑이 환했다 아침마다

누나와 함께 떨어진 감꽃을 주웠다 꽃밭에서

피는 꽃마다 하늘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 꽃이 지면

들고 있던 하늘도 무너졌다 아버지의 양복 호주머니에서

돈을 훔쳤다 훔친 돈을 담장 기왓장 아래

숨겼다 앵두나무 그늘이 좋았다 둥근 그늘 밑으로

들어가 돗자리를 깔았다 해질 무렵, 어머니가

이름을 부르며 찾았다 대답하지 않았다 뒷뜰에서

죽은 것처럼 누워 있었다 비가 오면, 마당의

백일홍 나무는 비가 오는 쪽만 젖었다

-계간《다층》(201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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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상 시인의 또래인 재일 조선인 여자 친구가 있다. 아버지는 제주 사람이고 어머니는 일본 사람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의 이름을 지을 때 한자 발음이 일본이나 우리나라나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을 골랐다고 한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이름을 자랑한다.

내가 알기로는 윤희상 시인의 부모도 아버지는 한국 사람이고 어머니는 일본 사람이다. 시인의 부모도 이름을 지을 때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 끝자가 '상'인 것으로 미루어 보면 남편이 아내를 배려한 느낌이 든다. 시인은 어땠을까. 외가가 다른 나라에 있고, 또 우리말이 낯선 어머니를 모신 시인의 어린 시절은 짐작조차 어렵다.

이 시는 무성영화나 소리 없이 넘어가는 스틸컷을 보는 듯하다. 지나치게 조용한 곳에서 귀를 울려오는 적막소리 같은 것으로 팽팽하다. 유일한 소리인 어머니의 호명도 어쩐지 적막하다. 모르쇠로 일관한 아들의 마음은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비가 오면 다 젖지 못하고 한쪽으로만 젖는 짝짝이 마음이 사뭇 아팠을 것이다. 최근 시인이 일본에 있는 '우리 학교'에 애를 쓰고 있다. 이 시와 같은 날들이 그런 마음을 낳았을 것이다.

안상학<시인·artand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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