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철없는 욕설문화 꾸짓는 어른 있어야

청소년 도 넘는 패륜놀이 '패드립'

#1. 중학교 2학생인 김모(15) 양의 어머니는 최근 아동청소년상담센터를 찾았다. 딸이 초등학교 6학년에 들어서면서 점점 난폭해지더니 지금은 어머니인 자신에게도 욕을 서슴없이 하고 있기 때문. "니가 해준 게 뭐가 있느냐?", "XX년, 엄마 니까짓 것"이라는 김 양의 막말은 이제 일상이 됐다. 짜증으로 시작해 화로 번지면 집안의 물건을 집어던지고 심지어 어머니를 칼로 위협하기도 했다.

#2. "할매미(할머니) 뒤져가꼬 용돈 줄었다. 왜 이렇게 빨리 뒈지냐. 돈주기 싫냐", "나를 욕하지 말고 차라리 내 매미(엄마), 애비를 욕해라. 니 애미 창녀고 니 애비는 개냐"(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부모에 대해 스스럼없이 욕설을 하고 어른에게 버릇없이 말하고 행동하는 '패드립'(패륜과 애드리브의 합성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시작된 패드립이 휴대전화를 통해 일상화되는 청소년들의 '패륜'이 도를 넘고 있다.

◆'패드립' 인터넷 카페 기승

부모와 어른에 대한 욕설과 비하는 단순한 투정과 화풀이를 넘어서고 있다. 패드립을 배워보자는 인터넷카페까지 생겨나고 있다.

청소년들은 컴퓨터를 못하게 해서, 반찬이 맘에 안 들어서, 용돈이 적거나 생일날 사온 선물이 맘에 안 들어서 등 사소한 이유로 "엄마가 부끄럽다"거나 "부모가 죽어버리거나 잔소리 못하게 언어장애라도 됐으면 좋겠다. 공부하고 있는데 짜증나게 한다" 등의 내용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한 인터넷 유머사이트에는 정신장애인 아버지를 비하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애비라는 놈은 맨날 장애인이라고 일 안 하고 먹고 엄마만 매일같이 일하러 나가고 애비가 빨리 고인이 됐으면 좋겠다." 포털사이트 지식공유 게시판과 카페 게시판에는 "패드립 가르쳐 주세요. 엄마 욕이나 심한 패드립 부탁드려요"라는 질문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청소년들이 이용하는 게임 사이트에선 게임을 하던 중 상대방을 깎아내릴 목적으로 부모를 지칭하며 서로 욕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공격 대상은 대부분 부모와 친척, 교사 등이고 불특정 다수의 기성세대나 죽은 사람을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인터넷을 통해 확산된 패드립이 스마트폰을 통해 일상화되고 있다. 스마트폰의 채팅 프로그램을 통해 누가 더 패드립을 잘하는지 경쟁하는 것이 놀이처럼 번지고 있다. "니 할매미(할머니)가 몸 팔아서 번 돈으로 니 매미(엄마) 키우고 니 매미가 몸 팔아서 번 돈으로 니년이 자랐구나"는 성적 비하도 스스럼없이 이뤄지고 있다.

중학교 2학년생인 석모(14) 군은 "친구들끼리 재미삼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인터넷카페에서 더 심한 욕을 해야 상대를 이긴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인 박모(16) 군은 "평소 친구들과 문자 메시지로 욕설을 주고받는데 학원에서 선생과 이야기하다 패드립이 나온 적도 있다"고 했다.

◆어른에 대한 존경심 사라져

전문가들은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 대화가 단절되고 성적만을 강조하는 입시위주의 학교교육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패드립의 배경이라고 지적했다. 또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청소년 사이에서 패드립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달 전국의 교사와 학부모, 학생 2천866명을 대상으로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교 학생의 81%, 학부모의 74%가 교육이 고통스럽다고 대답했다. 고통의 원인은 바로 '학력과 성적 위주의 교육 풍토'(33.6%)와 '명문대 진학을 성공 잣대로 삼는 사회 풍토'(36.9%)라고 꼽았다. 중'고생의 61.8%가 '학교생활이 고통'이라고 했고, 학부모의 54.3%가 '자녀 지도에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학생 29.3%만이 '교과내용이 꿈과 끼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고 답해 학교교육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소년들이 부모와 교사 등 기성세대에 대해 청소년들이 존경심을 잃어버린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 교수는 "학교는 좋은 성적만을 독려하고 수업 이외에 교사와 터놓고 대화할 기회가 없고 집에 오더라도 부모들은 학업성적에만 관심을 가진다"며 "경쟁과 대학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 속에서 가정도 안식처가 되지 못하는 등 보금자리 기능이 약해지면서 발생하는 분노와 스트레스를 청소년들은 인터넷 공간에서 욕설로 해소하는 것"이라고 했다.

황정향 대구아동청소년상담센터 원장은 "욕설을 일상화한 청소년들의 문화를 바로잡는 기초는 가족 안에서 찾아야 한다"며 "사춘기라고 치부하면서 아이만의 문제로 봐서는 안 되고 부모도 책임감을 갖고 함께 바뀌어야 한다. 미술치료와 상담 등 마음치유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해 잠재된 화를 풀고 어릴 적부터 바른말을 쓰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광호기자 kozm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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