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정치쇄신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지난 4월 11일 이후 토론회를 포함해 회의가 다섯 차례 열렸다. 3월 19일 국회 운영위원장이 제안한 구성 결의안에 따르면, 이 위원회는 지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와 제18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새로운 변화의 요구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 표출되어 정치쇄신 및 국회 개혁방안을 국회에서 조속히 논의하고 처리해야 할 필요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까지 이 위원회에서 다룬 안건은 정치쇄신 중의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개선'이었는데, 이것이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서로 앞다투어 공약해 많은 국민에게서 반향을 불러일으킨 '기초 지방선거 정당공천 배제'에서 비롯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도 최근의 보도 등에는 이 약속이 정치쇄신특별위원회에 받아들여져 공직선거법의 개정을 통해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듯하다.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는 18명의 국회의원 중에도 소속 정당에 관계없이 정당을 물리치자는 데에 드러내놓고 반대하거나 내심 난감해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고 한다. 이런 기이한 현상은 국론을 가르는 중대한 사안에서조차 새누리당과 민주당에 당의 의견인 당론이 없는 데서 비롯된다.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내건 공약은 소속 정당의 정책위원회나 의원총회 등에서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이 국민에게 약속한 '기초 지방선거 정당공천 배제'에 대해서는 당내에 이견을 가지고 있는 당원들이 실로 적지 않은 것이다. 참으로 무책임한 정당정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당공천을 둘러싸고는, 특히 영남과 호남에서 극심한 지역주의 투표 행태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역구 국회의원이 공천을 사실상 좌지우지하고 있어 이런 정치풍토가 다소 정화될 때까지라도 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배제하자는 주장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폐단에도 토호세력의 발호를 견제하고 여성을 비롯해 사회적인 약자를 발탁하는 기능 등은 정당공천제를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이를 견지하자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지방선거와 정당의 관계에서 이런 이분법적인 주장이 아닌 제3의 길은 없을까?
정당공천을 배제하자는 주장은 1960년 이후 중단된 지방선거를 1991년에 재개하면서 나타났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에 의해 지방의회가 해산된 후 내무부는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방선거가 처음 이루어진 1952년 이후의 지방자치를 회고하는 '지방자치백서'를 발간했다. 그런데 당시 정당이 선거에 관한 선전을 자유롭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놀랍게도 정부의 백서에 정당의 폐해는 언급되지 않았다. 정당공천을 둘러싸고 국론을 둘로 쪼개는 흑백적인 주장에서 벗어나 여기서 온고지신의 대안을 찾아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는 후보자 등록과 투표용지 등이 지금과 달랐다. 후보자 등록 때는 정당의 당원도 당원이 아닌 사람과 마찬가지로 일정 수의 주민에게서 받은 추천서를 제출했다. 투표용지에는 후보자의 기호와 성명은 인쇄되어 있었지만, 소속 정당명은 없었다. 그리고 투표용지에 후보자를 게재하는 순위는 후보자들의 추첨으로 정했다. 이 순위는 현행 교육감선거의 투표용지 게재 순위와 같다. 따라서 국회에 의석을 가지고 있는 정당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를 투표용지에서 앞장세우며, 5명 이상의 지역구 국회의원을 가진 정당 등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에게 전국적으로 통일된 기호를 부여하는 지금과 같은 제도는 없었던 것이다.
지방선거와 정당의 관계를 1952년부터 1960년까지의 방식으로 되돌리면 정당의 폐해는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1998년의 제2회 동시지방선거부터 시행한 통일기호제도는 전국적인 대중매체와 어우러져, 천수백에 이르는 선거구마다 형성될 수 있었고 존재한 선거 쟁점을 잠재우거나 무력화해, 주민들이 지역에 따라 여러 장의 투표용지에 기호 1 또는 2의 후보자를 찍는 줄 투표의 투표행태를 조장해 왔다. 이런 망국적인 통일기호를 없애고 투표용지 게재 순위를 선거구마다 후보자들의 추첨으로 정하게 한다면 정당공천을 용인하더라도 그 폐해는 반감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정치쇄신특별위원회 위원님들! 그렇지 않을까요?
강재호 부산대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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