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0일 삼성 라이온즈 이승엽이 352호 홈런을 쳐 한국 프로야구사의 홈런 역사가 또 한 번 바뀌었다. 아무도 이루지 못한 고지를 이승엽이 밟게 되면서 삼성의 홈런 역사도 새롭게 쓰여 졌다. 삼성은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이만수(SK 감독)가 1호 홈런을 때려내면서 야구의 꽃으로 불리는 홈런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소속 선수로 양준혁(은퇴)이 개인통산 351개 홈런(2009년 7월 14일 대구 두산전)을 기록, 한동안 가장 많은 홈런을 친 선수로 기억됐다. 이젠 이승엽이 그 바통을 넘겨받았다.
25일 현재 삼성은 팀 통산 3천709개의 홈런을 쳐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다.
타자라면 펜스 너머로 공을 날려 보낸 뒤 관중의 환호를 받으며 여유 있게 베이스를 도는 홈런을 꿈꾼다.
삼성 이만수와 해태 김봉연은 프로야구 초창기 홈런왕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자존심 대결을 벌였다. 출범 첫 해 이만수의 개막포를 시작으로 불꽃을 튀기기 시작한 홈런왕 경쟁은 결국 22개의 홈런을 때린 김봉연에게 돌아갔다. 홈런왕 타이틀을 빼앗긴 이만수는 1983년(27개)과 1984년(23개) 두 해 연속 홈런왕을 거머쥐며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했다. 그리고 1985년에는 해태 김성한(22개)과 공동 홈런왕에 오르며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초창기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슬러거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1986년 이만수는 또 하나의 뜻 깊은 기록을 두고 김봉연과 맞닥뜨렸다. 누가 먼저 통산 100홈런을 달성하느냐였다.
원년 홈런왕 김봉연과 그 후 3년 내리 홈런왕을 거머쥔 이만수의 100홈런 선점을 둔 경쟁은 야구장을 뜨겁게 달궜다. 부상으로 르망 자동차가 내걸렸고, 영호남 팬들은 한 치 양보 없는 응원을 보냈다.
78개의 김봉연, 이보다 7개가 많은 85개의 이만수.
100홈런 선점은 30살을 넘긴 김봉연보다 6살이나 어린 데다 파워가 앞선 이만수에게 가까운 듯 보였다.
그러나 1986년 이만수가 허리부상으로 결장하고 있는 동안 김봉연은 파워를 과시하며 5월 8일 85개로 이만수와 동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시즌 초반 25경기를 결장한 뒤 5월 6일 출전한 이만수는 나흘 뒤 MBC 정삼흠을 상대로 홈런포를 가동하고선 쫓아오는 거북이를 보고 놀란 토끼처럼 홈런생산을 계속했다.
전기리그가 끝났을 때 이만수는 홈런 수에서 김봉연에 뒤졌으나 통산 홈런 수에서는 94대91로 3개 앞섰다. 하지만 후기리그 초반 이만수가 또다시 결장을 거듭하다 거의 한 달 만에 얼굴을 비추는 사이 김봉연은 홈런을 쌓았고, 8월 2일 빙그레 이상군에게서 96호를 뽑아냈다.
100호까지 4개를 남겨놓은 김봉연은 6개를 더 쳐야 하는 이만수보다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8월 8일 이만수의 95호 홈런 소식에 이튿날 97호 홈런으로 응답한 김봉연은 상대투수의 견제와 초조함에 사로잡혀 더는 진척이 없었다. 김봉연이 지루한 '헛스윙'을 반복하는 동안 이만수는 99호까지 급진전, 김봉연을 2개차로 따돌리고 대망의 100호에 1개차로 다가섰다.
엎치락뒤치락하며 100호 홈런 선점을 둔 두 거포의 경쟁은 싱겁게 끝났다. 8월 31일 99호를 때린 이만수는 하루 휴식을 즐긴 9월 2일 빙그레와의 홈경기에 톱타자로 나서 "100호 홈런까지 단 1개가 남은 이만수의 홈런이 터지면 아낌없는 박수로 축하해 달라"는 장내 방송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창호의 초구를 받아쳐 100호 홈런의 마지막 퍼즐을 끼웠다.
이만수는 3회말 손문곤에게서 좌중월 홈런을 더해 200호로 가는 첫 걸음마저 내디뎠다. 김봉연은 9월 16일 MBC 김태원을 상대로 6회와 8회 연타석 홈런을 쳐냈으나 99호에 머문 채 자신의 100호 홈런기념비 건립을 1987년으로 넘겨야 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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