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고양이의 피서

얼마 전부터 우리 집 고양이들이 내 곁을 비우기 시작했다. 항상 불을 끄고 누울 때면 졸래졸래 따라 들어와 곁에 눕던 녀석들이었는데, 요즘은 통 오지 않는다. 눕기가 무섭게 장난감을 물고와 놀아달라던 앨리샤마저도 몇 번 내 주위를 맴돌며 칭얼거리다가 바깥으로 나가 버린다.

이뿐만이 아니다. 낮엔 소파 위에서, 컴퓨터 모니터 뒤에서 늘 내가 머무는 근방에서 늘어져라 한잠을 청하던 녀석들이 온데간데없다. 너무 안 보이는 통에 행여나 옷방이나 화장실에 갇힌 건 아닌가 하고 찾으러 다녔더니 침대 밑과 화장실 앞 차가운 타일 위에 떡하니 누워있는 녀석들을 발견했다. 누가 오거나 말거나 귀찮고 피곤하단 표정을 지으며 꼼짝 않고 누워있는 녀석들, 애교쟁이 앨리샤마저 이렇게 시크하고 게으른 고양이로 변하게 만든 건 다름 아닌 '여름'이다.

나도 여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추우면 껴입으면 되지만 더우면 옷을 최대한 얇게 입어도 더운 게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높은 습도 때문에 짜증도 많이 나고 만사가 귀찮아 지는 계절이라 늘 여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곤 한다.

나와 함께 사는 반려동물이 아니랄까봐 체셔와 앨리샤는 나보다 훨씬 더 여름을 싫어하는 눈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에도 몇 번이고 서로 껴안고 뒹굴고 장난치던 녀석들이 여름이 시작된 이후로는 함께 '싸움 놀이' 하는 것을 통 보지 못했다. 대신 각자 그저 조금 더 시원한 곳을 찾아서 몸을 뉜 채 시간을 보내는 것이 하루일과의 대부분이 되었다.

더위를 타는 녀석들을 방치하면 더욱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여름이면 늘 '어떻게 하면 두 고양이를 덜 덥게 해줄까' 고민한다. 올해도 여름을 맞이하여 체셔의 배 쪽 털을 잘라주고, 발바닥으로만 땀을 배출한다는 고양이기에 체온 조절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앨리샤의 발바닥에 난 북슬거리는 털도 다듬어 주었다. 더위 먹는 것을 방지하는데 시원한 물도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오늘은 물그릇에 얼음을 넣어주었더니 두 마리 모두 눈을 반질거리며 다가와서 관심을 보였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쿨매트를 사서 자주 머무는 곳에 깔아주면 시원해 한다고 한다. 그것을 듣고 예전에 TV에서 더워하는 시베리안 허스키들에게 꽁꽁 얼린 물병을 굴려주니 좋아하던 것을 본 기억이 나서 냉동실에 있던 찜질팩을 꺼내어 누워있는 녀석들 곁에 놓아주었더니 내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질겁하면서 싫어했다.

이렇게 더위를 타면서도 체셔와 앨리샤가 항상 버리지 못하는 묘한 고집이 있다. 인공적인 시원함은 싫어한다는 것이다. 더위를 피해 하루 종일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을 달고 사는 나와는 달리 체셔와 앨리샤는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부러 누워있는 곳으로 선풍기 방향을 돌려주면 벌떡 일어나서 자리를 옮겨버린다. 게다가 에어컨을 틀어놓으면 꼭 에어컨 바람이 향하지 않는 더운 방으로 자리를 옮긴다. 예전에 체셔가 베란다가 있는 집에 살 때는 에어컨만 켜면 꼭 실외기 때문에 한층 더 온도가 올라간 베란다로 나가겠다고 고집을 피우곤 했다. 이러는 것을 보면 고양이만의 특유한 감각으로 지나치게 인공적인 찬바람은 몸에 좋지 않다고 느끼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올 7월도 후텁지근한 공기와 이글거리는 태양과 함께 시작됐다. 수년을 반복해왔으니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름의 이 무더위는 매번 힘들고 지친다. 무더위에 에어컨을 켜고픈 충동이 물밀 듯 밀려오지만 에어컨을 싫어하는 체셔와 앨리샤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참게 된다. 이렇게 나보다 더 더울 텐데도 에어컨 바람 없이 견디는 녀석들을 보면, 나 하나 시원하자고 에어컨을 트는 것을 참고 여름을 버티며 환경보호에 작게나마 일조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선풍기마저 포기할 순 없지만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