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버스로 그리는 경북 스케치] <32>굽이굽이 운문호를 끼고 도는 길

비 내리는 노송길 추억 한걸음…끼익 끽 탁탁 베틀소리 정겹네

한 주 내내 하늘이 끄무레하다. 장마라는데 비가 오락가락해 갈피를 잡기 힘들다. 오전에 쏟아붓던 비가 점심때만 지나면 개곤 했다. 비가 오면 사람도, 길도, 풍경도 젖는다. 사실 비는 시내버스 여행과는 궁합이 맞지 않는 것 같다. 비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기도 힘들고, 젖은 미역처럼 축 늘어지니 의욕도 떨어진다.

청도는 안개 낀 날이 많다. 낙동정맥이 서남향으로 갈라진 비슬지맥은 청도군 매전면 선의산과 남쪽 용각산으로 내려오며 청도를 동서로 가른다. 버스 창문으로 바라본 산들은 낮은 물안개 사이로 머리를 갸웃갸웃 내밀고 있다. 맑은 운문호를 돌아드니 구름 속을 달리는 듯하다.

◆우권을 쥔 손에는 땀이 난다

청도에서 소싸움을 빼놓을 는수 없다. 청도소싸움경기장에서는 주말마다 10경기씩 소싸움 경기가 열린다. 청도읍에서 경기장이 있는 남성현 방면으로 30분~1시간마다 버스가 오간다. 원형 경기장 안에는 젊은 연인이나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소싸움 경기는 30분, 6라운드로 진행된다. 경기 시작 10분 전 소들이 경기장을 돈다. 발걸음이 가볍고 투지를 불태우는 소가 컨디션이 좋다. 상태가 나쁠 때는 걸음이 무겁고 입에 거품을 물기도 한다. 뿔 모양에 따라 소들의 싸움 성향도 달라진다. 종달새 머리 깃털처럼 뾰족한 모양의 '노고지리 뿔'이나 45도로 기울어진 '옥뿔'은 대개 공격형이다. 반면 옆으로 누운 '비녀뿔'이나 아래로 처진 하향뿔은 맷집이 강하고 방어형이 많다. 공격적인 소들은 투지가 넘치지만 지구력과 매에 약하다. 방어형 소들은 맷집이 강해 장기전으로 승부를 보는 경향이 있다.

우권을 샀다. 소싸움은 단승과 시단승, 시복승 등 3개 방식으로 베팅을 할 수 있다. 단승은 한 경기에 청코너와 홍코너 중 승리 혹은 무승부를 점치는 방식. 시단승은 승리하는 소와 승리하는 라운드를 함께 맞히는 방식이다. 시복승은 승리소와 라운드를 두 경기 연속으로 맞히면 된다. 8경기 '핵탄두'와 '번개'의 대결. 핵탄두는 수비형인 비녀뿔이고, 번개는 공격형인 옥뿔이다. 단승으로 '핵탄두'에 5천원, '1라운드 승리' '2라운드 승리'에 각각 5천원씩 1만5천원을 걸었다. 돈을 걸고 나니 경기를 보는 마음 자세부터 달라진다. 모두 일찌감치 경기를 끝내는 타입인데도 예상외로 접전이 이어졌다. 사람 마음을 몰라주는 소들은 좀처럼 승부를 내지 못했다. 무승부로 끝나기 2분 전에야 결판이 났다. 전광판을 보니 배당률 1.2배. 1만5천원을 걸어 6천원을 손에 쥐었다.

◆소싸움의 감칠맛을 더하는 장내 중계

소싸움경기장 방송실 안. 마이크 앞에 앉은 25년 경력의 차정학 장내 아나운서가 목을 가다듬었다. "밀어붙이는 홍소 장문, 빗겨치는 청소 흑석! 노련한 청소 흑석이 외곽을 돌며 장문의 패기에 맞섭니다." 조련사가 소리를 지르며 독려하자 싸움은 더욱 격해졌다. 숨이 가쁜 소들의 배가 헐떡이고 배변을 하면서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차 씨의 해설도 덩달아 빨라졌다. "두 소가 싸움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목감아돌리기에 뿔치기로 맞섭니다." 종료 1분 전에야 흑석의 승리로 결판이 났다. 해설을 마친 차 씨도 마이크를 끄며 한숨을 돌렸다.

차 씨가 소싸움 중계 아나운서에 뛰어든 건 1992년. 청도 이서천변에서 열린 소싸움 경기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구수한 사투리와 실감 나는 중계는 꽤 인기를 끌었다. 뿔치기, 뿔걸이, 어깨걸이 등 그가 중계에서 쓰던 소싸움 기술 용어들은 자연스레 공식 용어가 됐다. "소싸움 중계는 순발력이 중요해요. 격렬하게 싸우던 소들이 잠시 멈칫하는 순간을 포착해서 중계를 해야 하죠. 그 순간 전세가 바뀌거든요."

그는 1999년 한일 국제전에서 맞붙었던 한우 번개와 일본 종달의 경기를 최고의 명승부로 꼽았다. 당시 국내 최강 소로 꼽히던 번개의 몸무게는 850㎏. 뿔이 큰 일본 화우인 종달의 몸무게는 950㎏이나 됐다. 번개의 장기는 머리를 틀어 공격하는 비껴치기. "덩치가 작은 번개의 공격에 종달이 혀를 빼물고 돌아서는 모습은 장관이었어요. 정말 해설하는 보람이 느껴지더군요." 그는 "3, 4라운드에서 끝나는 경기가 집중도도 높고 중계도 쉽다"고 했다. 15~20분 정도 싸우면 가진 기술을 모두 보여주기 때문이란다. "가족 단위로 오는 방문객들이 많으니까 '피'나 '똥' 같은 적나라한 표현을 못 하죠. 소들이 싸우지 않고 머리만 맞대고 있을 때도 난감해요. 해설은 쉴 수 없으니까.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한쪽이 밀리더라도 예측 불허라고 둘러대기도 하죠."

◆구름이 머무는 운문사와 사리암

오전 9시 20분 청도읍에서 운문사행 버스에 올라탔다. 요금은 4천100원. 곰티재 터널이 개통했지만 버스는 여전히 구불구불 옛길을 넘는다. 40여 분을 달려 동곡정류장에서 숨을 돌렸다가 운문사로 향했다. 20분을 더 달리면 운문사 주차장이다. 청도읍에서는 꼭 1시간이 걸렸다.

운문사 주차장에서 10여 분을 걸으면 솔바람길에 들어선다. 운문사까지 1㎞가량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이다. 빼곡히 들어선 노송들은 춤을 추듯 휘며 하늘로 길게 뻗었다. 방패 모양으로 큰 흉터가 난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다. 맑은 물을 따라 숲길을 지나면 운문사가 나타난다. 2층으로 된 범종루가 방문객을 맞는다.

절 안으로 들어서면 천연기념물 제180호 처진 소나무가 보인다. 소나무 앞에는 수백 명은 앉을 법한 만세루와 대웅보전이 자리 잡고 있다. 운문사에는 대웅전이 둘인데 상대적으로 작은 건물이 더 오래됐다. 새로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극락전으로 이름을 바꾸려 했지만 보물 제385호로 지정돼 있어 그대로 뒀다. 극락전 앞에는 석등과 석탑이 한 쌍씩 나란히 서 있다. 관음전과 명부전에서는 독경 소리가 흘러나오고 신도들이 탑을 돌며 정성스레 절을 올렸다.

운문사에서 나와 계속 길을 올라가면 사리암이다. 사리암 아래 주차장까지도 숲 속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빗줄기가 꽤 굵어지기 시작했다. 초록빛 숲과 참배객들의 형광색 우산들이 묘한 부조화를 이룬다. 사리암은 기도하는 이들로 북적거렸다. 마침 점심 공양시간이라 식당으로 향했다. 식판에 먹을 만큼 덜어 먹고, 형편대로 시주를 하면 된다. 무말랭이와 미역국, 상큼한 겉절이와 콩나물 무침이 꿀처럼 달다.

◆삼베 짜는 소리는 아련한 추억으로

운문사 주차장까지 내려와 오후 1시 30분 대천행 버스를 탔다. 대천정류장에서 오후 3시 35분 동곡순환버스 마일행 버스로 갈아타면 청도군과 경산시의 경계인 정상리까지 갈 수 있다. 요금은 3천원.

정상리는 삼베로 유명한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삼 농사도 짓지 않고, 베를 짜는 집도 사라졌다. 대마를 노린 도둑들의 극성 때문이라 했다. 하지만 장병필(79) 할머니는 여전히 베를 짜고 있다. 재료가 되는 삼은 안동에서 사온다. 할머니의 베틀은 반질반질하게 닳아 윤이 났다. 할머니의 어머니가 쓰던 베틀이라니 100년은 넘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낮에는 농사를 짓고, 베틀 위에서 새벽을 맞았다. 그가 30대일 때는 삼베 한 필에 8천원을 받았다는데 요즘 수의용 삼베는 한 필에 50만~60만원을 호가한다. 삼베를 짜는 일은 무척 고된 일이다. 음력 7월쯤에 수확한 삼은 푹 쪄서 껍질을 벗긴다. 이것을 가늘게 찢어 양잿물에 삶았다가 맑은 물에 씻는다. 침을 발라가며 허벅지에 문질러 삼실을 사리고 풀을 먹인 뒤 바디에 꿰어 베틀에 올린다. 할머니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은 한쪽으로 튀어나와 있다. 오랜 시간, 실을 매는 북(씨올의 실꾸리를 넣는 것으로 날 틈으로 오가며 씨를 푸는 구실을 한다)을 움직이며 생긴 훈장이다.

장 할머니가 물에 불린 잉아(베틀의 날실을 끌어올리도록 맨 실)를 한 올 한 올 베틀에 달아맸다. 바디가 잘 움직이도록 붓으로 기름칠을 하고 가는 실이 내려앉도록 짚을 끼웠다. 발가락에 건 끈과 연결된 베틀신대를 들어 실패를 담은 북을 밀고 바디로 탁탁 밀어 넣었다. 가늘고 얇아 빗살 같은 대오리를 쳐가며 씨줄을 짜 내려갔다. 끼익끼익거리는 소리와 함께 한마디씩 천이 늘어난다. 굽은 허리와 주름진 손끝에서 거친 삼실은 부드러운 천으로 조금씩 얽혀간다.

오후 6시 15분 정상리에서 대천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다음 행선지인 고령으로 가려면 다시 대구로 돌아가야한다. 청도에서 대구로 가는 직행버스는 30분마다 운행하지만 시내버스를 타려면 풍각면으로 가서 0번 버스를 타야 한다. 글'사진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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