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잇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순히 우리 조상들의 삶의 모습 등 옛것을 보존하고 대대로 이어가는 중간역할을 하는 일에 불과할까? '기능보유자' '중요무형문화재' '인간문화재' 등으로 불리는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 느낄 수 없는 '숭고한 그 무엇'에 대한 애착과 사랑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겉으로 보이는 '명예'의 뒷면엔, 남다른 '애환'과 '피땀 어린 노력'이 숨어 있다.
◆여원무를 아십니까?
경산시 자인면에서는 매년 단오날 때 '특이한 단오제'가 펼쳐진다. '경산자인단오제'는 신라시대부터 내려오고 있는 전통 민속축제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인 '경산자인단오제'에는 유난히 눈길 끄는 행사가 있다. 전국에서 유일한 '여원무'가 그것이다. '여원무'는 신라시대에 한장군이라는 사람이 자신의 누이와 함께 장정들을 데리고 여자로 가장해서 춘 춤이다. 한장군은 1천200년 전부터 자인에서 전설처럼 전해오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당시 왜구의 무리가 인근 도천산에 은거하며 주민들을 괴롭히자 한장군은 누이와 함께 왜구를 섬멸할 계략을 세우고 여장을 한 후 화려한 꽃관을 쓰고 놀이판을 벌여 왜구들을 유혹했다. 장군의 뜻대로 왜구들이 여원무의 신기함에 눈이 팔려 넋을 잃고 있을 때 아름다운 꽃춤을 추던 한장군이 큰소리를 외치자 함께 춤추던 춤꾼과 구경꾼들이 바닥에 깔아 두었던 칡 그물로 왜구들을 덮쳐 한꺼번에 섬멸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43년간 여원무 전문
여원무의 주인공인 장군 역할을 하는 이는 교장 선생님(경산자인여중, 경산여자전산고교) 출신의 박인태(69) 씨다. 겉으로는 마음씨 좋고 푸근한 동네 어르신 같은 모습이다. 가까운 지인들조차 그가 우리나라에서도 희귀한 여원무의 주인공이란 사실을 잘 모른다. 하지만 박씨는 43년 동안 여원무의 맥을 잇고 있는 사람이다.
한눈에 척 봐도 옛날 '장군' 같은 용모다. 그가 경산자인단오제에서 여원무의 주인공으로 발탁된 사연도 장군의 외모와 힘이 장사였기 때문이다. 대구 계성중'고교 재학시절 유도선수였던 그는 대한유도학교(현재 용인대 유도학과) 졸업 후 자인여자중학교 체육교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박 씨는 "40여 년 전에는 30㎏이 넘는 대형 꽃관을 쓰고 춤을 출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당시 패기 넘치는 체육교사였던 제가 적임자로 발탁됐다"고 한다. 청년시절 인연을 맺은 여원무는 교장이 된 후에도 계속 했다. 그는 1971~1991년 '한장군 놀이' 전수 장학생, 1981년 이수자, 1982년 전수교육 조교 등을 거쳤다. 여원무 보유자 김도근 씨가 2005년 작고한 이후, 2007년 3월 문화재청으로부터 경산 자인단오제(중요무형문화재 제44호)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요즘은 후계자인 전수조교 김봉석(49)'이수자인 노구갑(36) 씨가 여원무를 춘다. 김명갑(37), 김인동(36) 씨가 전수생으로 뒤를 잇고 있다. 박 씨는 "경산자인단오제는'애국충절'을 계승하는 문화재"라며 "교육자로서 학생들에게 충효사상을 일깨워주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밝힌다.
◆기능보유자가 되기까지
여원무는 경산시가 1969년에 발굴'복원했다. 이듬해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 때 출전해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1971년 3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2007년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명칭을 '한장군놀이'에서 '경산자인단오제'로 변경했다. 박 씨가 경산자인단오제 기능 보유자로 지정받는 과정에서 일화가 있다. 2006년 경산자인단오제 기능 보유자 심사를 위해 경북도전문위원 5명이 경산자인의 계정 숲에 있는 전수회관에서 심사를 펼쳤다. 심사위원장이 박 씨가 독실한 기독교인임을 알고 "경산자인단오제에는 여원무뿐 아니라 제사의례 등 다양한 순서도 있는데 그 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박 씨는 "저는 기독교인으로서 그런 순서에는 참여할 수 없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다는 것.
(사)경산자인단오제보존회 안명욱(77) 이사장은 "그때 자칫하면 기능 보유자 지정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고 회상한다. 안 이사장은 심사위원들에게 "38년 동안 여원무를 보전해 온 유일한 사람인데 이런 문제로 기능 보유자로 지정받지 못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는 것.
박 씨는 "무거운 꽃관을 쓰고 전신을 움직여 춤을 추는 기예를 요구하는 여원무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춤사위가 특징이다"며 "경산자인단오제는 여원무뿐 아니라 다양한 행사로 이어지는데 원형 보존 차원에서 '제의' 등에 대한 보유자 지정도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사진'박노익 선임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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