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20일 만에 8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초고속 흥행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설국열차'는 자본주의의 게걸스러운 먹성을 잘 보여준다. 이윤 추구를 위해서는 계급투쟁이라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주제도 마다하지 않음을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힘은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가 자본주의적 소비의 대상으로 변질되고 있는 데서도 잘 확인된다.
쿠바혁명을 이끌었고 볼리비아에서 '혁명 수출' 도중 1967년 CIA에 체포돼 총살당한 비운의 혁명가이지만 자본주의는 그의 생애가 체현하고 있는 순수성과 열정, 그리고 비극성이 상업적 성공의 재료가 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그 시작은 쿠바의 사진작가 알베르토 코르다가 1963년 아바나 광장에서 찍은 체 게바라 사진이다.
미국의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실크스크린 작품 '체 게바라'를 포함, '모나리자' 다음으로 많이 복제되었다는 이 사진은 체 게바라가 총살당한 뒤 이탈리아에서 출판돼 대박을 친 '볼리비아의 밀림'이란 책에 실리면서 '체 게바라 마케팅'을 촉발시켰다. 이후 체 게바라의 얼굴을 새긴 티셔츠는 물론 스위스 시계 브랜드 스와치는 체 게바라의 얼굴 사진이 든 시계를 내놓았고, 영국에서는 '체'라는 상표의 맥주가 나왔는가 하면, '체 게바라'라고 이름 붙인 남자 향수도 나왔다.
더 기가 막히는 것은 체 게바라가 '섹스 심벌'로도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체 게바라 사망 40주년인 지난 2007년 슈퍼 모델 지젤 번천이 한 패션쇼에서 체 게바라의 얼굴 사진으로 모자이크한 비키니를 입고 '워킹'을 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지하의 체 게바라가 이를 보았으면 무어라고 할까.
광주시립 소년소녀합창단원이 광복절 기념식에서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 차림으로 공연한 것과 관련해 광주시가 지휘자 이 모 씨를 중징계하려고 하자 논란이 일고 있다. 체 게바라의 사상은 간데없고 이미지만 남은 지금의 현실에 비춰 광주시의 처사는 조금 '오버'하는 것 같다. 그러나 굳이 광복절 기념식 공연에 '체 게바라 티셔츠'를 등장시킨 지휘자의 '무개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광복절에 웬 체 게바라? 유관순 열사나 김구 선생의 얼굴이 새겨진 티셔츠였다면 진정 광복절의 의미에 맞는 '연출'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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