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무명칼럼] 여름은 지났다만 겨울은 또 어쩌나

26이라는 숫자만 떠올리면 더 더워진다. 실내 온도 26도 이하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느 해보다 힘든 여름을 보냈다. 도저히 잠들지 못해 에어컨을 켜면서도 쭈뼛쭈뼛할 수밖에 없었고, 냉장고 문을 열다가도 전기요금 폭탄이 날아들지나 않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른 문을 닫으며 지냈다. 특히 공공 기관에서는 민간의 실내 온도보다 2도가 더 높아야 했다. 그것도 모자라 냉방 자체를 아예 못 하게 한 날도 있었다. 그날만큼은 그들의 사무실은 찜질방이었다. 그곳의 온도는 다른 도시 같으면 기상 관측 이래 최고치를 경신하고도 남을, 35도를 넘기고 있었다.

세월은 어김없이 바뀐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도 이제는 한풀 꺾였다. 아침저녁으로는 바람이 시원하다. 선풍기의 도움이 없어도 잠을 잘 수가 있다. 또 한동안은 전력 걱정을 안 해도 되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고생 고생을 하면서 결국 더위와의 싸움을 견뎌냈지만 찝찝한 구석은 남는다. 억울하다는 표현이 더 맞다. 왜 이런 생고생을 했나를 생각하면 그렇다. 정말 우리가 전기를 흥청망청 써서 이런 일들을 당해야 하나? 한 번 따져보자. 올여름은 유독 더 더웠다. 열대야도 역대 두 번째인 36일이었다니 분명 날씨 탓도 크다. 하지만 정작 우리들을 더 덥게 만든 건 날씨가 아니었다.

우선 '천인공노'할 원자력발전소 관련 범죄로 촉발된 전력 공급 부족 사태가 그렇다. 원인 제공자는 누군가? 공기업 사람들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이나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국전력기술 등이 그런 곳들이다. 이른바 신의 직장이라는 곳 아닌가? 여기에 대기업 계열사와 원자력 마피아라는 '끼리끼리 집단'까지 가세한 것이라고 한다.

그들만 족치면 끝인가? 그 윗선은? 한국전력이나 정부 높으신 분들 가운데는 관련자가 없는가? 정치권에는? 범죄를 발본색원한다며 검찰 수사가 진행된다니 기다려보자. 문제가 된 것은 원전이지만 다른 곳이라고 탈이 없을 리 없다. 없다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 원전을 갖고 장난치는 사람들이니 화력발전이나 수력발전은 가만히 놔두었을까? 더구나 수력발전은 이번 일의 맨 중심에 있는 한수원 소관 업무다.

정부 부처에까지는 불똥이 튀지 않는다고 하자. 또한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무죄 추정이라고 하니까. 그러나 관리 감독 부실에 대한 그들의 책임은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다. 개인 범죄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그들이 전력 부족 사태를 예견하고 미리미리 대책을 세웠다면, 원전 비리라도 미리 막아 가동 중단된 원전 숫자를 최소화시켰다면 국민들이 이 고생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어떻게 해서 공기업은 만들기만 하고 '노 터치'인가? 아니 '언터처블'인가? 고위 공직자들의 은퇴 후 자리 보전용 기관이라서? 정부의 감독도 받지 않는가? 자신들이 퇴임 후 갈 자리에만 눈이 멀어 서로 눈감아 주고 그러는 사이인가? 더위에 거의 떠 죽을 뻔했던 국민들은 안중에 없었을 것이다.

답답한 구석은 여전히 남는다. 정부가 앞으로도 변변한 전력 수급 대책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지난 10년간 정부는 나라 살림살이가 부쩍 커졌음에도 전력 공급량을 늘리거나, 획기적으로 전력 소비량을 줄이는 일에는 게으름을 부렸다. 대신 그 사이 불법의 싹은 자라고 부실의 덩어리는 커진 것이다. 그래 놓고 국민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절전, 절전을 요구했다.

여름이 갔다고 고통이 끝난 것은 아니다. 당장 4개월쯤 뒤면 여름보다 전력 예비율이 더 떨어지는 겨울을 나야 한다. 그때 국민들은 여름철과는 정반대로 실내 온도를 18도 이하로 맞추고는 벌벌 떨어야 한다. 이 상황에서 더위보다 추위가 더 견딜 만할 것이라고 위안이라도 해야 하나?

생각할수록 울화가 치민다. 국민들의 용서와 협조를 구하는 수준의 읍소까지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장관이나 총리가 나와서 전력난의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대국민 사과문이나 호소문이라도 발표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 자리에서 앞으로의 대책도 발표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보나마나 정부는 다가올 겨울 전력난 때도 블랙아웃 위기를 거론하며 국민들의 위기 의식만 고조시킬 것이다. 정작 전력난의 원인은 자기들이 제공해 놓고 국민들만 들들 볶으니 참.

다가올 겨울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다시 열이 뻗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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