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도동서원

뜻글자인 한자에는 우리 말 '주다'에 해당하는 것이 많다. 가장 일반적인 주다는 급(給)이나 수(授)가 될 것이고, 부(付)는 주면서 부탁하는 것, 그리고 증(贈)은 선물한다는 뜻에 가깝다. 단순한 낱말에도 급수가 있다면 주다의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글자는 '사'(賜)일 것이다. 우리말로 치면 내린다, 베풀다에 해당한다.

'음식수염사지필상'(飮食雖厭賜之必嘗'음식이 비록 먹기 싫더라도 부모님이 주시면 반드시 맛을 봐야 한다)의 예도 있지만 대개 왕조시대의 절대 권력자인 임금이 내린 것을 뜻한다. 사극에서 자주 나오는 사약(賜藥), 사사(賜死)에서 임금이 준 땅인 사패지(賜牌地), 임금이 선비에게 책을 읽을 여가를 준다는 사가독서(賜暇讀書) 등의 예에서 찾을 수 있다.

사액서원(賜額書院)도 있다. 임금이 현판을 내린 서원이라는 뜻이다. 서원이라고 하면 금방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을 떠올릴 정도로 붕당 정치와 당파 싸움의 본산지로 나쁘게 각인돼 있다. 그러나 교육기관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조선 때의 서원은 지방 사학기관으로서 학자를 기르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조정이 하지 못하는 일을 명망 있는 선비가 대신 하니 나라는 당연히 서원을 장려했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사액서원이다. 임금이 직접 현판을 하사하고, 노비와 서적, 면세 등의 특권을 준 것이다. 첫 사액서원은 최초 서원이기도 한 백운동서원이다. 조선 중종 때인 1543년 풍기 군수 주세붕이 영주 순흥면에 세워 뒤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주청해 1549년 소수서원으로 사액됐다.

그 뒤 문묘 배향과 사학기관으로서의 기본 이념이 퇴색하고, 정치 세력화라는 목적이 더해지면서 서원은 급격하게 늘었다. 선조 때까지 63곳(사액서원 16곳)이던 서원은 숙종 때만 166곳이 설립되는 등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전까지 417곳(사액서원 200곳)의 서원이 있었다. 붕당 정치의 폐단을 들어 대원군은 온 유림의 결사반대에도 전국 47곳만 남겨두고 모조리 없앴다.

사액서원 이야기는 대구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의 도동서원 때문이다. 한훤당 김굉필을 배향한 곳으로 1568년 쌍계서원으로 출발해, 사액됐다가 임진왜란 때 불탔다. 1604년에 김굉필의 묘가 있는 현재의 자리에 보로동서원으로 세워져 1607년 도동서원으로 사액되면서 인근 마을도 도동리로 고쳤다. 도동(道東)은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뜻으로 퇴계가 김굉필을 '동방도학지종'(東方道學之宗)이라고 칭송한 데도 잘 나타나 있다. 도동서원은 대원군 서원 철폐령 때, 김굉필을 배향한 전국 15개 서원 가운데 유일하게 남았다.

도동서원의 이런 역사에 초점을 맞춰, 달성군은 7일 도동서원 사액을 재현한다. 이날 오전 종로초교에서 경상감영까지 봉안사 행렬을 시작으로 오후에는 달성군 현풍에서 사액 행렬 퍼레이드를 열고, 도동서원에서 사액 봉안례를 개최하는 일정이다. 이번 행사는 숙종이 남인을 숙청하고 노론과 소론에 정권을 맡긴 갑술환국(1694년) 이후 전국에서 처음으로 사액서원을 재현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또 달성군을 넘어 유림의 고장이라는 대구와 경북의 위상을 드높이는 일이다. 달성군은 이 행사를 매년 재현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임금이 사액하는 부분을 포함해 전 장면을 복원하기 위해 경복궁 사용 등의 문제를 관계 기관과 협의 중이라 하니 기대가 크다.

도동서원의 가치는 정부가 영주 소수서원, 안동 도산'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데서도 잘 드러난다. 2011년 말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됐고, 내년 초쯤 정식으로 신청서를 제출해 실사를 받는다. 유네스코 실사팀에 보여줄 좋은 콘텐츠를 만든 셈이다.

요즘의 문화 콘텐츠는 새롭게 만드는 것도 많지만, 옛것을 되살려 현대적으로 재조명하는 것이 대세다. 이는 옛길 살리기나 지역성이 있는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창작 오페라, 뮤지컬이 많이 제작되는 데에서 잘 나타난다.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옛것을 잘 보존하고 특장(特長)을 살려 복원, 재현하는 일은 성패 여부를 떠나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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