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초기 독일과 일본의 지도자들은 미국의 전쟁 능력을 높게 보지 않았다.(진주만 기습 뒤 '잠자는 거인을 깨웠다'고 탄식한 일본의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 같은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극히 예외였다)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은 다언어 사회이기 때문에 분열되어 있고, 자본주의 국가의 운명인 사적 이익의 충돌로 국민적 에너지의 결집이 어렵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미국의 압도적 승리였다.
그 이유에 대해 행정학 전문가로 2차대전 당시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루터 귤릭은 '폭넓은 비판과 논의의 허용'이라고 결론지었다. 민주주의는 의견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때문에 정책 결정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결함을 걸러낼 수 있는 반면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모든 정책이 비밀리에, 그리고 부분적인 정보만 가진 사람들로 이뤄진 소집단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치명적인 결함을 지닐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이런 이점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르마티아 센의 기근(飢饉)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지금까지 역사를 돌이켜보면 민주적 정치체제와 언론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는 기근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론의 비판이 제기되면 정부는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란 것이다. 마오쩌둥 독재하의 중국에서 대약진운동 기간 중 3천만 명이나 굶어 죽은 반면 인도에서는 독립 후 불완전하나마 민주적 제도가 정착된 이후에는 기근이 없었다는 것이 좋은 예다.
그러나 옳지 않은 의견은 어떻게 해야 할까. '자유론'의 저자 존 스튜어트 밀은 그래도 억압은 안 된다고 주장한다. "설령 (의견이) 잘못된 것이라도 그것을 억압하는 것은 틀린 의견과 옳은 의견을 대비시킴으로써 진리를 더 생생하고 명확하게 드러낼 소중한 기회를 놓치는 결과를 낳는다."
이석기 의원 체포 동의안 표결에서 나온 반대'기권'무효 등 '이탈 표'의 출처를 놓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서로 상대방을 범인으로 모는 추태를 연출하고 있다. 여기서 확인되는 것은 양당 모두 '100% 찬성'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민주주의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의견의 등질화(等質化)'다. 파시즘이나 공산 독재가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10% 정도의 이탈표는 다양한 의견의 존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증거다. 100% 찬성이나 반대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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