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人 세계인In] (11)프랑스 파리 이배 화백

도도하던 파리화단 매료시킨 '숯의 감성'

숯을 소재로 작업하는 이배 작가의 손.
숯을 소재로 작업하는 이배 작가의 손.

소년의 집에는 라디오가 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네모난 상자같은 스피커 하나. 그 스피커는 동네 어느 집의 라디오에 선으로 연결된 것이었다. 그가 라디오를 자신의 눈으로 처음 '발견'한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었다. 소년의 학교엔 풍금이 한대 있었다. 소년은 풍금 속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신기해 했다. 중학교에서 처음 피아노를 보았다. 풍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아름다운 모습과 소리에 소년은 넋을 잃고 말았다. 자라면서 산을 하나씩 넘어 시골 고향에서 멀리 갈 때마다, 소년의 눈에는 더 아름답고 신기한 것들이 나타났다. 소년은 보다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소년은 산을 넘고 또 넘어 갔다.

프랑스 파리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서양화가 이배(57)에게 그림은 미지의 세계를 향한 끝없는 탐구였다.

◆첫 번째 전환점, 미술의 길로

청도읍(현 화양읍)의 한 농가에서 5남 중의 맏이로 태어난 이배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을 곧잘 그려 상을 타오기도 했지만 자신이 화가가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않은 평범한 소년이었다. 모계중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우연히 과제로 제출한 그림이 선생님의 눈에 띄었다. 이배의 작품을 눈여겨본 이는 당시 청도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서양화가 문곤이었다. 문곤 선생의 권유와 지원으로 그는 미술특기생으로 대구 영신고로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농부였던 부친은 장남인 제가 농사꾼이 되길 바라셨죠. 하지만 선생님의 설득으로 진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여기저기 미술대회에서 상도 여러 차례 받아왔고, 이 학교에서는 학비는 물론이고 장학금까지 주기로 했거든요."

영신고를 거쳐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군 제대 후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부모님의 바람을 따른 결정이었다. 결혼도 하며 삶은 안정을 찾는 듯 했지만 마음 한편에선 그림에 갈증이 커져갔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대학교수의 길을 모색하며 안정적 삶을 살아가려고도 해봤다. 안주하려던 그를 채찍질한 것은 그의 아내였다. 한국 최고의 미대를 나와 재능을 인정받은 그가 전업작가로서 성공해야 한다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었다. 그녀는 남편의 재능과 가능성을 굳게 믿는 내조자였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파리행을 꿈꾸게 된다.

◆두 번째 전환점, 파리에서의 새 삶

34세의 청년화가 이배가 프랑스 파리에 나타난 것은 1989년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가을날이었다. 파리는 그에게 고난의 땅이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왔으나 그림을 그릴 화실을 구할 수 없었다. 여기저기를 떠돌다 어렵게 화실을 구하긴 했으나 고난은 이제 시작이었다. 한국에서 들고온 약간의 돈은 1년여가 지나자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집에는 쌀이 떨어지는 날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림은 전혀 팔리지 않았다. 외국에서 갓 온 무명의 작가가 그린 작품이 파리의 컬렉터들 눈에 띌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살림을 몰랐다. 마음껏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이 좋을 뿐. 아침에 집을 나가 밤이 이슥해 돌아올 때까지 그가 바라보는 건 캔버스뿐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생활의 압박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물감을 사대기에 파리의 물가는 너무 비쌌다. 그렇다고 그린 그림이 팔리는 것도 아니었다. 첫 10년 동안엔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 드문드문 찾아오는 지인과 선배들이, 그냥 도와주지 못해 한 점씩 가져가 준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되니 스스로도 스트레스가 엄청났죠. 생활도 생활이었지만 그림 그리러 와서 그림을 못 그리게 되다니요. 그래서 스트레스성 원형 탈모까지 올 지경이었습니다. 아침이 되면 한 웅큼씩 뭉텅뭉텅 사라져 나중엔 이마가 훤해졌죠."파리에서 첫 10년, 작가 이배에게는 행복한 시간이었지만 생활인 이배에게는 엄청난 고통의 시기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선정

생활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작가로서의 지명도는 달랐다. 물감값의 압박 때문에 새로운 소재를 찾아 헤매던 그에게 어느날 문득 마트에서 파는 고기 굽는 숯이 눈에 띄었다. 물감에 비해 값이 싸디 싼 숯은 그에게 가뭄 끝의 단비와 같은 것이었다.

숯을 소재로 새로운 상징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시작했고, 그 작업을 점차 발전시켜 나갔다. 파리의 화랑 이곳저곳에서 조그마하나마 전시를 할 기회도 얻었다. 대구 시공갤러리 등 한국에서 전시회를 열 기회도 많아졌다. 한국의 지인들이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기 시작한 것. 그런 전시회를 계기로 이름을 알렸고,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되었다. 비로소 국내외 화단이 작가 이배를 주목하게 된 것. 그림도 팔리기 시작했다. 파리에서 전속 화랑도 생겼다. 지금은 프랑스 정부에서 영구 임대해준 아틀리에까지 가지게 되었다.

그는 올 11월 미국 뉴욕 개인전을 계획하는 등 작가로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더 많이 해외 무대로 나와 활동하고,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합니다. 지금은 국내와 해외를 나누어 생각할 수 없는 시대이거든요. 작은 힘이지만 저도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프랑스 파리에서 글'사진 홍헌득기자 duckdam@msnet.co.kr

※ 이배 화백은

1956년 경북 청도군 청도읍(현 화양읍)에서 5남 중의 맏이로 태어났다. 모개중학교와 대구 영신고를 거쳐 홍익대학교 서양화과와 대학원을 나왔다. 세계 미술의 신사조를 찾아 1989년 프랑스 파리로 가 현재까지 20여 년간 미술 작업을 하며 파리 화단에서도 중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0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었으며, 국내외를 오가며 수십 차례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고 있다. 올 11월 뉴욕 개인전과 내년 5월 프랑스, 9월 대구시립미술관 개인전 등이 예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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