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팥 기능이 점차 나빠져서 투석이나 신장이식을 준비해야 하는 환자들을 자주 접한다. 그런데 나름 열심히 설명하고 설득하지만 환자들은 내 말만 믿고 선뜻 투석을 시작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투석이라는 새로운 치료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당장 생각하기에 무섭고 귀찮으니까 아주 심해져서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버텨보자는 심산이다.
그러나 병 치료뿐 아니라 세상 모든 일이 모두 그러하듯 적당한 때가 있다. 치료도 시기를 놓치면 더 많이 고생하고 결과도 좋지 않다. 그럴 때 의사는 답답하고 초조해진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환자를 협박(?)하고 설득해야 한다.
노인들은 흔히 이런 말씀들을 하신다. "이만하면 살 만큼 살았다. 투석을 하느니 차라리 죽을란다"며 고집을 꺾지 않으신다. 그럴 때는 "어르신! 투석하지 않는다고 죽지도 않을뿐더러 고생만 하고 결국에는 투석을 하게 됩니다. 그뿐이 아니고 병이 더 중해져서 치료를 하시면 본인도 힘들지만 자식들 고생시키고, 자식들 돈도 훨씬 더 많이 들어요."
내가 아픈 것은 참을 수 있으나 자식 고생을 바라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터. 그런 부모의 자식사랑을 이용해 협박 아닌 협박(?)으로 치료에 참여시키는 것이다. 죄송한 마음도 있지만 환자를 치료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다른 방법은 환자를 이용해 환자를 설득시키는 것이다. 즉 과거에 말 안 듣고 고집부리다가 결국에는 병이 위중해진 상태에서 투석을 시작해 지금은 잘 지내시면서 "그때 의사 선생님 말 들었으면 고생을 덜 했을 텐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환자들 중에 붙임성 있고 언변 좋은 환자 한두 명을 미리 포섭해 놓는다. 말하자면 '치료 홍보대사'라고나 할까.
홍보대사를 소개시켜주면 일사천리다. 환자가 환자를 설득하는 것이다. "옛날에 의사 말 듣지 않고 고집만 부리다가 결국에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더 들고 결국은 투석을 했지요. 그러니 당신도 지금처럼 상태가 그나마 나쁘지 않을 때 얼른 의사 말을 듣고 시키는 대로 하세요."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이 있다. 원래의 뜻은 '오랑캐를 이용해 다른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의미인데, 어찌 내 사랑스러운 환자들을 감히 오랑캐에 비유할까마는 환자의 마음속에 버티고 있는 두려움과 고집이라는 오랑캐를, 한때 그런 오랑캐가 마음속에 버티고 있었던 환자를 이용해서 물리치는 것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는 일반적으로 부정적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환자를 치료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협박과 설득을 다 해야'하는 것이 의사의 역할이다.
아! 악역을 맡은 자의 슬픔이여.
김성호 대구파티마병원 신장내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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