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북人세계In] <12>호주 시드니 서정배 GS World 대표

좌절 모르는 오뚝이, 호주 1위로 서다

시드니 하버를 출발해 맨리로 가는 페리에서 서정배 대표가 자신의 기업을 상장사로 키우겠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시드니 하버를 출발해 맨리로 가는 페리에서 서정배 대표가 자신의 기업을 상장사로 키우겠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서정대 대표가 호주 시드니 스트라스필드 거리에서 한인타운의 변화상을 설명하고 있다.
서정대 대표가 호주 시드니 스트라스필드 거리에서 한인타운의 변화상을 설명하고 있다.

"결혼 후 호주를 여행하면서 광활하고 쾌적한 자연환경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어린 시절 서부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사업의 기회를 보고 있던 터라 그 꿈을 이룰 곳으로 호주를 선택했습니다."

17년 전 서정배(46) GS World 대표는 잘 다니던 직장(대우전자 수출부)을 그만두고 제2의 삶을 찾아 호주 시드니로 왔다. 이민 자금은 살던 집의 전세금 5천만원이 고작이었다. 서 대표는 아무런 기반 없이 사업에 뛰어들어 고생한 끝에 현재 개폐형 어닝(awning, 알루미늄 등으로 만든 경량의 차양으로 창이나 출입구 위쪽에 설치하는 것)과 루핑(roofing) 분야에서 호주 1위인 업체를 경영하고 있다.

◆호주에서 '기업 상장'이 꿈

서 대표가 호주에서 처음 시작한 일은 양모 이불 수출업이었다. 직장 다닐 때 익혀둔 수출입 업무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 3년 바짝 고생을 하니 일이 잘 풀려나갔다. 아예 봉제기를 사서 이불을 만들고 커튼, 침구류도 생산했다. 또 양모를 포장하는 자루를 호주농부연맹에 판매하다가 현재는 양모, 감자, 곡류 등을 포장하는 팩을 제조'판매하고 있다. 7년 전부터는 차양막과 어닝 사업에 도전했다. 서 대표의 업체는 이 분야에서 호주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호주는 물론 한국, 중국에도 사업체를 두고 있다. 이들 5개 사업체의 연간 매출은 3천만 달러 수준이다.

비빌 언덕 하나 없는 시드니에서 돈 벌기는 쉽지 않았다.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자동차를 몰고 수백 수천 ㎞ 거리를 달려갔는데도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호주 사람들은 길에서 차가 고장 나면 모르는 사람인데도 자기 일처럼 도와줍니다. 하지만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파고들 틈을 주지 않습니다. 특히 이민자가 경쟁 상대로 성장하면 조직적으로 사업을 방해합니다. 어닝 분야 사업을 하면서 '쥐새끼 한국인이 시장질서를 무너뜨린다'라는 모욕적인 말까지 들었습니다."

냉대와 차별을 극복하는 길은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방법뿐이었다. 그는 LED조명과 에어컨을 장착한 개폐형 루핑 시스템을 만들었고, 여기에 태양광시스템을 적용한 기술로 특허까지 받았다. 한국(청도)에도 루핑과 어닝 제품 생산시설을 조성 중이다. 서 대표는 "호주에 이어 한국에도 외관이 아름답고 기능성이 강조된 루핑과 어닝 제품을 공급할 예정이다. 한국은 아직 이 분야에서는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호주에서 사업으로 성공한 우리 교민들은 많다. 하지만 대부분 청소용역, 음식업, 관광업 등 서비스 분야로 제한돼 있는 편이다. 서 대표의 꿈은 GS World(어닝 분야)를 호주에 상장(上場)시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정말 개미처럼 열심히 일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교민 사업체들은 서비스업이거나 부가가치 낮은 임가공 수준입니다. 물론 교민 기업 가운데 매출이 연간 1억 달러에 이르는 청소용역업체가 있고,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한 의류유통업체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호주에서 상장한 교민 기업은 없습니다. 제가 그 일을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5년만 기다려주세요."

◆뜻있게 살고파

그는 호주에 처음 와서 서부지역 5천700㎞ 거리를 7일 동안 버스로 여행했다. "끝없는 평원을 달리면서 다짐했습니다.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겠다고. 그리고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저 자신에게 약속했습니다."

서 대표는 소탈한 인상을 가졌다. 말과 행동은 세련되지 못한 편이지만 사람 좋은 웃음이 매력적이다. 돈에 대한 생각을 물어봤다. "미얀마에서 사업을 크게 하는 우리 교민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어려운 현지인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등 좋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분을 뵙고 느낀 것이 많았습니다. 교민들도 돈을 벌면 지역사회에 일정 부분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돈을 많이 벌어 잘 쓰고 싶습니다."

어느 날 차에서 우연찮게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를 들었다. 노랫말을 흥얼거리다가 방황하던 젊은 시절, 이민 와서 고생한 기억들이 떠올랐다. 마른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때는 어느 정도 호주 생활이 몸에 익었고 돈도 좀 벌었는데 왠지 모를 허전함, 공허감이 밀려왔습니다.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는 3년 전부터 '로얄 플라잉 닥터'를 후원하고 있다. 이 단체는 호주에서 항공기를 이용해 무의촌 주민들을 찾아가 의료 봉사활동을 하는 곳이다. 또 모교인 대구 정동고등학교에 7년 동안 1천만원의 장학금을 내놓기도 했다.

서 대표는 현지 교민사회와 경북도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2004년부터 경상북도 해외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재호한인상공인연합회 부회장도 맡고 있다.

그는 호주에서 살면서 생활이 많이 바뀌었다고 했다. 한국에서 살 때 그의 밤과 주말은 '음주가무'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호주에 온 뒤로 일을 마치면 곧장 집으로 가고, 주말에는 대부분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스쿠버, 하이킹, 승마 등 새로운 취미도 많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보수적인 경상도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와서는 집안일을 많이 하고 가정적으로 변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요리는 아직입니다. 하하."

◆중학생 때 배추 장사

서 대표는 삼 형제 중 둘째로 3대로 구성된 대가족 품에서 성장했다. 다혈질의 성격에 주먹도 센 편이어서 학창시절에 사고도 여러 번 쳤다. "그렇다고 불량청소년은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정의감 때문에 저지른 사고였으며 그 바람에 경찰서도 드나들었고 정학도 먹었습니다."

중학생 시절부터 배추'수박 장사를 했고, 공사판에서 막노동으로 돈도 벌었다. 고교시절에는 원반던지기 선수 생활도 했다. 그는 학교공부만 할 나이에 많은 것들을 겪었다. 어쩌면 이런 경험들이 그의 삶에 자양분이 됐을지도 모른다. "고교 때 내신성적은 형편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대입 준비를 열심히 했고, 영남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대학시절엔 장학금을 받았고 대기업에 취직도 했습니다. 그리고 모교인 정동고에서 '변모된 선배'로 후배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강의도 했죠."

그는 이민이나 해외취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한다. "외국 생활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처럼 힘들고 막막할 것입니다. 하지만 주도적이고 자발적으로 살다 보면 쨍하고 해 뜰 날이 올 것입니다. 다만 남들 따라가지 말고 자신의 인생을 창조한다는 마음으로 살길 바랍니다. 특히 '내가 한국에서는 이랬는데…'와 같은 생각과 말은 버리시는 것이 좋습니다."

호주 시드니에서 글'사진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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