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케 베르나도트는 스웨덴 왕가 출신으로 부와 적당한 명예를 누리며 편안하게 살 수 있었으나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1895년에 태어난 그는 좋은 교육을 받고 다른 왕족이나 귀족들처럼 군인이 돼 장교로 복무했다. 이후 여러 단체를 조직하고 후원했는데 특히 보이스카우트 활동에 정성을 기울였다. 33살에 미국의 부호 상속녀와 결혼하고 네 아이를 낳는 등 결혼 생활도 행복했다.
그의 삶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전환점을 맞았다.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스웨덴 적십자회 부회장이 돼 독일군과 연합군의 포로 교환을 중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945년에는 아돌프 히틀러의 측근인 하인리히 히믈러와 접촉, 독일집단수용소에 있는 덴마크와 노르웨이인들을 스웨덴을 통해 고향으로 돌려보내자고 제안했다. 공습을 피하고자 수송 버스를 흰색으로 칠한 '하얀 버스 계획'이 받아들여져 폴란드인과 유대인까지 모두 3만1천여 명이 풀려났다.
그의 외교적 수완은 잘 알려져 종전 후 UN으로부터 이스라엘의 건국과 이에 반대하는 팔레스타인을 중재하는 일을 맡았다. 그러나 중재안은 이스라엘의 불만을 사게 돼 1948년 오늘, 이스라엘 과격주의자들이 베르나도트 일행이 탄 차량에 총을 쏴 그가 즉사했다. 53세의 나이였다. 베르나도트의 암살을 주도했던 이츠하크 샤미르는 나중에 이스라엘 총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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