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떠날 때, 갖고 갈 수 있는 것은 물건이나 돈이 아닌 감동이라는 추억뿐이다. 그리고 죽은 후에도 다음 세대에 남는 것은 자신이 품었던 '뜻'이다. ('감동 예찬' 중에서)
지금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감동의 '추억'이란 '뜻'은 무엇이었을까? 큰 바위, 큰 산 같은 존재 아버지. 얼마 전 성묘를 다녀오면서 문득 지난날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내가 일곱살 때 우리집이 이사를 했다. 그 당시 난 집앞 놀이터에 있었고, 가족들은 이사짐을 옮겼다. 옮길 때만 해도 왔다갔다 하다 보면 내가 집에 올 거라 생각하고 계셨고, 그 사이 잠시 집이 비어 있었다. 난 아무도 없는 빈집 앞에 돌아왔고, 이내 찾으러 나섰지만 그만 길까지 잃어버렸다.
나중엔 아버지가 날 찾았는데 엄청 심하게 꾸짖으셨다. 하지만 이내 얼마나 다행이냐고 좋아하셨다. 어릴 땐 아버지가 안 계시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고, 어떻게 우리끼리 살아가지 할 정도로 걱정하고 의지했다.
그 아들이 커서 보니 아버지는 작아 보였다. 당신은 작아진 걸 아셨는 것 같다. 말씀하실 때마다 힘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땐 아버지가 늙어셔서 그런 건가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 내가 커서 그렇게 보인 거였다. 아버진 그대로이셨는데, 여지껏 쌓아온 일들이 하나 둘씩 풀려져가고,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계실 거라 생각했었는데…. 결국 그 자리를 떠나셨다. 사랑하는 이들만 남겨두고 말이다. 본인은 떠날 때 얼마나 힘드셨을까? 오히려 말 못하고 떠나신 아버지가 남아 있는 우리보다 더 힘들어 하셨는지도 모른다.
아버진 돌아가실 때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궁금하다. 뭔가는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셨을텐데 말이다
임종 직전 아버지 귀에 대고 말했다. "사랑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모든 모습을 존경합니다." 평소 거의 해보지 못했던 말을 전했다. 아버진 미소와 함께 눈가에 이슬같은 눈물을 비치셨다.
어떤 마음으로 돌아가셨을까? 어릴적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마저 떠나시어, 거의 고아처럼 친척집에 얹혀 사셨던 아버지.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 한 번 못 받아보고 일만 하셨던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렇게나마 기억하고 싶다.
이젠 뭐든 바랄 게 아니라 해줄 수 있는 게 있을 때, 할 수 있어야 하며 돌아서서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 아버지로 때론 애들과 같이 할 수 있는 놀이나 운동, 취미를 통해 이해하고 도와주며 사랑하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는 그런 아버지로….
작은 것이라도 소중히 하고, 하찮은 일이라도 신중하며, 나 이외의 그들의 말에도 귀기울이는 그런 아버지 말이다.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도 최선을 다하는 아버지로…. 이 모든 것이 추억의 감동이었고, 뜻일 거라 생각해본다.
이홍기<극단 돼지 대표 ho88077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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