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꿈의 무대

인간이 예술과 만날 때 일상은 멈춘다. 어렵게 시간을 내어 극장에 공연을 보러 갈 때도, 잠시 짬을 내어 시 한 편을 읽는 순간에도 일상의 시간은 정지되고 예술과 만나는 자기만의 시간 속으로 들어간다. 인간이 예술과 마주할 때, 물리적인 시간은 의미가 없어진다. 일상이 흘러가던 수평적 시간에서 예술과 마주한 수직적 시간은 때론 무한 확장되어 관객에게 이후 전 인생에 걸쳐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기기도 한다.

지난주말, 수성아트피아에선 짧았던 예술과의 만남이 평생의 꿈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직접 무대 위 배우로 등장하는 공연이 있었다. 칠순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손자뻘 되는 중학생들과 석달 동안 같이 땀을 흘리며 호흡을 맞춰 온 무대가 펼쳐졌다. 바로 가족뮤지컬 '로미오와 줄리엣, 지금의 이야기'다.

수성아트피아는 지난해부터 일반 시민이 전문가의 조련을 거쳐 무대에 설 수 있는 뮤지컬 공연을 만들어왔다. 지난해에는 엄마와 아이들이 함께 무대에 선 '엄마들의 수다'라는 작품을 공연했다. 아이와 함께 무대에 서보는 소중한 추억을 만들고 싶다며 소박한 바람으로 수성아트피아를 찾았던 엄마들은 예상보다 혹독한 연극 연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배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라며 괜히 시작한 건 아닌가 갈등하는 분도 있었고, 일상에서는 숨어 있던 자아의 내밀한 모습과 만나게 되자 연습현장을 숙연하게 만들어버리는 분들도 있었다. 무대가 요구하는 깊은 호흡과 강력한 집중력은 일상에 길들여져 살던 그들에게 엄청난 긴장과 중압감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대 위의 시간을 꿋꿋이 버텨냈다. 석 달간의 연습으로는 결코 감출 수 없는 어설픔을 자신들의 삶이 묻어난 진실함으로 이겨냈고, 기성배우가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공감과 감동을 보는 이들에게 전해주었다. 공연 뒤풀이 자리가 눈물바다가 되었음은 현장에 없었던 사람이라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을 터.

올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은 중·고교 청소년들이었다. 대구 교육의 현장에 있는 우리 아이들, 마주 보고 서 있는데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모기만 한 소리를 뱉어내던 아이들, 서로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던 아이들이 석 달간의 연습을 이겨냈다. 용지홀 대극장에 모인 수백 명의 관객 앞에서 그들은 당당히 그들의 이야기를 말하고 노래했다.

이제 그들은 무대에의 꿈을 이루었고, 치열했던 연습과 공연의 기억을 꿈처럼 안고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전과는 달라진, 새롭게 주어진 일상을 맞이할 것이다. 언제가 또다시 저 꿈의 무대에 설 날을 기다리며….

최영<수성아트피아 공연기획팀장·furyo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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