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100억 물려받으면 절반이 세금…100년 기업 육성 '손톱 밑 가시'

중소기업 가업 승계 가로막는 조세제도

#.가업을 잇기 위해 2011년 4월부터 아버지 회사에서 일해 온 A 씨. 2012년 6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회사를 물려받았으나 상속세 때문에 회사 경영이 힘들어졌다. 가업상속공제를 받으려면 '상속인은 상속개시일 2년 전부터 계속해 가업에 종사해야 한다'는 조항 때문에 공제를 받지 못하고 은행 대출을 받아 상속세를 냈다.

#.1980년 문을 연 B 회사는 '핫 러너'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다. 900명의 종업원을 두고 지난해 2천4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최근 5년 동안 법인세 등 890억원의 세금을 납부했다. 하지만 가업승계만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이곳 대표는 "상속세를 계산해보니 400억원 나오더라"며 "내가 만약 갑작스럽게 잘못 돼서 자식에게 회사를 넘겨주게 되더라도 상속세 납부를 위해 회사를 팔아야 할지 모른다"고 걱정했다.

박근혜 정부가 중소기업의 성공적인 가업승계를 공언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불안감이 크다. 현실과 동떨어지게 '세금 거두기'가 중점이 된 가업승계지원제도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가업상속공제 적용범위를 현행 매출액 2천억원 미만 기업에서 3천억원 미만 기업으로 확대하는 내용을 내놨지만 기업인들은 이것만으로는 가업승계가 원활히 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중소기업의 염원

중기중앙회의 2010년 가업승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68.5%가 가업을 승계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가업승계를 원하는 이유는 '기업을 지속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실제 중소기업의 48.3%는 경영 후계자를 이미 정해 놓았다고 답했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가업승계 준비는 절반 이상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68.5%가 가업승계 준비가 '불충분하거나 준비 못 함'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현행 상속증여세 등 조세부담이 승계 이후 기업 경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질문에 '영향이 없다'고 답한 이들은 9.5%에 불과해 대부분의 기업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기업의 가업 승계 부담을 덜기 위해 2007년부터 '가업상속공제'를 실시하고 있다. '가업상속공제'란 가업 승계에 따른 상속세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제도로 피상속인이 생전에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을 상속인에게 승계했을 때 피상속인의 가업 영위 기간에 따라 최고 300억원까지 상속세과세가액에서 공제해준다.

이 같은 제도가 있지만 여전히 중소기업들은 가업승계 대책으로는 불충분하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말이 공제이지 조건이 너무나 까다로워 이를 다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다"며 "공제받은 뒤에도 지켜야 할 조건이 많다"고 말했다.

◆가업승계 장벽 세금

가업승계를 원하는 기업이 많지만 이들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조세'다. 한국조세연구원에 따르면 가업승계를 가로막는 주된 장애 요인은 '승계 관련 조세부담(54.1%)'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기중앙회가 가업승계 시 애로사항을 묻는 질문에 '상속'증여세 등 조세부담'이라는 응답률은 2010년 73.4%, 2011년 88.4%, 2012년 86.1%로 나타났다.

피상속인의 사망을 기준으로 사망 전 재산이 이전될 때 부과되는 것이 증여세이고 후에 부과되는 것이 상속세다. 현행법상 최고 상속세율은 50%로 100억원을 물려받으면 절반인 5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뜻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 최고세율(26.3%)의 2배에 가깝다. 때문에 가업을 승계받는 상속인들은 갑작스러운 조세부담으로 개인 재산을 처분하거나 상속 주식을 매각하는 상황을 겪기도 한다.

한국가업승계기업협의회 회장인 강상훈 동양종합식품 대표는 14억원의 상속세를 내기 위해 본인 소유의 빌딩을 판 것은 물론 상속 주식 가운데 일부를 세무서에 현물 납부해야 했다.

강 대표는 "감당하기 어려운 세금은 회사를 물려받고자 하는 의지를 꺾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정부는 잘 모른다"며 "상속세 때문에 기업이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2세대가 상속 공제를 받으려면 공제 신청을 기점으로 가업에서 2년 이상 근무를 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피상속인의 사망 등으로 인한 가업 승계에는 공제를 받기 어렵다.

또 1인 상속으로 제한을 두고 있기 때문에 형제 및 가족 간에 법정 분쟁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사후 조치도 공제 요건에 들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가된 양도소득세 이월과세는 가업승계 의지를 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실제 중소기업의 83.3%는 가업승계를 위한 정책과제로 '상속'증여세 부담 완화'가 필요하다고 답해 제도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중기중앙회 관계자는 "가업승계는 100년 장수기업을 만드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상속세 등 관련 제도 개선과 함께 2, 3세 등 상속인의 경영수업과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경석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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