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철(56'대구 동구 율하동) 씨는 최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 부하 직원이 남긴 댓글을 보고 의아했다. 직장 후배는 '이 사진 갠소하시는 게 좋을 거 같은데요….'라고 달아놓았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라 그 글을 단 부하직원을 불러 물어봤더니 "개인소장 하시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올린 글"이라고 했다. 김 씨는 "나도 인터넷 많이 하고 젊은 사람들의 트렌드를 잘 따라간다고 생각해왔는데 '갠소'라는 단어 한마디에 뭔지 모를 벽을 느꼈다"며 "점점 젊은이들과의 의사소통이 힘들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23년 만에 한글날이 공휴일로 재지정됐지만 한글은 언어파괴적인 신조어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특히 인터넷과 모바일 네트워크의 활성화로 인해 그냥 보면 웬만해서는 그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인터넷 줄임말이 신조어로 대거 등장하면서 세대 간의 소통도 단절되고 있다.
박모(40'대구 북구 동천동) 씨는 어느 날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이 쓰던 휴대폰에 뜬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다. 박 씨는 딸에게 "'어제 엄마가 핸폰 샀는데 엄마 호갱님 되신 듯'이라고 떴던데 '호갱님'이 뭐냐"고 물어봤다. '호갱님'이란 '호구'에 '고객님'이라는 말이 합쳐서 생긴 말로 물건 살 때 판매자들이 속이기 쉬운 고객을 이야기한다. 박 씨는 "딸이 '아빠는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주는데 머쓱한 것을 떠나 '이러다가는 내가 자녀들의 말을 전혀 못 알아들을 날이 오겠구나' 싶어 걱정이 생겼다"고 했다.
이런 언어파괴적인 신조어를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터넷이나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해 접하는 경우가 많다. 정보를 압축해 전달하려는 통신 언어의 특성상 말을 줄여 쓰는 경향은 늘 존재해왔다. 문제는 이런 언어파괴적인 신조어 경향을 방송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모(30'대구 서구 비산동) 씨는 "어느 날 심야 라디오 방송을 듣는데 DJ가 '사연을 보내는 청취자에게 푸선, 마선을 드린다'라고 말해 무슨 말인지 몰라 어안이 벙벙했다"고 말했다. 알고 봤더니 푸선은 푸짐한 선물, 마선은 마음의 선물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 씨는 "올바른 단어만 사용해도 모자랄 방송이 이런 식으로 언어파괴를 조장해서야 되겠나 싶었다"며 "특히 그 시간 방송의 주 청취자가 청소년들인데 청소년들 언어생활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실제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실시한 2009년 전국 초'중'고 교사 대상 설문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의 욕설'비속어 사용 빈도가 높아진 이유'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88.1%가 '인터넷'영화'방송의 영향'이라고 대답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신조어들이 젊은 세대와 어른세대의 소통을 막으면서 '세대 단절'이라는 극단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세중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장은 "줄임말 자체를 나쁜 것으로 볼 수는 없지만, 최근의 심한 줄임말들은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면서도 특정 연령층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으로 결국 세대 간 의사소통의 단절을 가져온다"고 했다. 또 김 단장은 "실제로 젊은 세대들이 신조어가 야기하는 언어파괴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이 같은 현상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학생들의 언어파괴를 바로잡으려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담당교사나 학부모들의 세심한 지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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