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마음을 담은 꼬리

어릴 적 읽었던 전래동화 중에 호랑이와 토끼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는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된 토끼가 위기를 모면하기 위하여 꼬리로 낚시를 하면 물고기를 잔뜩 잡을 수 있다고 거짓말로 호랑이를 속여 넘기고 무사히 도망갔다는 내용이었다. 재치 있는 토끼가 주인공격이긴 했지만, 내겐 물속에 담근 호랑이 꼬리 삽화가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았다. 이야기 내용에 따르면 차디찬 얼음물이긴 했지만, 물속에서 살랑거리는 호랑이의 꼬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탐스럽게 느껴졌다.

이 이야기의 영향만은 아니겠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동물의 꼬리가 좋았다. 털실을 뭉쳐놓은 것만 같은 사슴이나 토끼의 짤막한 꼬리, 돌돌 말린 돼지꼬리, 현악기 활의 주재료로 쓰이는 늘씬한 모양새의 말꼬리까지 꼬리의 생김새가 정말 다양하기도 했고, 사람에겐 이미 퇴화되어 꼬리뼈만 남고 사라진 신체 부위이기 때문인지 내겐 늘 신기해 만져 보고픈 충동이 생기곤 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지금은 또 다른 의미에서 꼬리가 신기하게 느껴진다. 바로 꼬리가 그네들의 감정 표현법의 하나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말과 글에 자신의 감정을 싣듯, 동물들은 꼬리 움직임에 감정이 실린다. 먼저, 흔히들 알고 있는 감정 표현이지만 강아지의 꼬리는 주로 반가움을 나타낼 때 가장 격하게 움직인다. 녀석들은 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해 멈출 줄을 모르고 정신없이 꼬리를 흔들며 가까운 사람들을 반기곤 한다. 가끔 지인의 집에 방문하여 이런 강아지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 환대받는 기분이 들곤 한다.

하지만 고양이는 조금 다르다. 강아지처럼 마구 꼬리를 흔드는 것은 결코 반가워서가 아니다. 바로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날 때이다. 예를 들면, 체셔를 강제적으로 끌어안고 발톱을 자르려고 할 때나 자꾸 귀찮게 건드리면 처음엔 꼬리 끝부터 살짝 움직이기 시작해서 메트로놈이 점점 빨리 똑딱거리듯 점차 좌우로 꼬리를 마구 휘젓는다. 그때쯤 되면 가만히 놓아두어야 체셔의 화가 가라앉곤 한다. 대신 고양이식 반가움 표시는 꼬리를 빳빳하게 들거나 꼬리를 등 쪽으로 젖힌 채 천천히 크게 살랑이며 내 몸에 닿게 할 때이다. 그러다가 좀 더 반갑거나 기분이 좋아지면 골골 소리도 함께 들려주곤 한다. 그리고 재밌는 것을 발견했거나 장난기가 가득 넘칠 때엔 꼬리 끝만 살랑이거나 꼬리를 빳빳하게 들고 돌아다닌다.

때론 꼬리는 손이 많이 가기도 한다. 예전부터 내가 유독 너구리 꼬리처럼 길고 풍성한 꼬리를 좋아해서 풍성한 꼬리를 자랑하는 고양이들만 집에 있는 까닭에 평소 관리에도 신경 쓴다. 긴 꼬리털이 엉키고 푸석푸석해질 뿐만 아니라 꼬리 끝이 바닥에 닿아 먼지나 이물질이 쉽게 달라붙기도 한다. 이 때문에 꼬리털만 조금씩 잘라주기도 하는데 털이 줄어든 꼬리는 좀 더 미세한 움직임이 명확하게 보여 감정 상태를 보기엔 좀 더 편하긴 하다. 이렇게 꼬리는 단순히 귀엽기만 한 신체 일부가 아니라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꼭 주의 깊게 봐야할 부분이다. 특히 울음소리로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는 앨리샤와 달리 평소에도 감정표현을 좀처럼 하지 않는 체셔의 기분상태를 눈치 채기 위해선 얼굴을 살피는 것보다 꼬리를 관찰하는 것이 간단하고 확실하다.

두 고양이가 몸을 말아 똬리를 틀고 꼬리를 베개 삼아 베고 잠든 모습을 볼 때면 솔직히 부럽다. 폭신하고 따뜻한 감촉, 거기다가 마음 상태까지 반영해주는 꼬리를 사람도 가지고 있다면, 좀 더 서로에게 솔직하고 따뜻하고 푸근한 세상이 될 수 있었을 것만 같은 마음에 사람의 몸에 꼬리가 없다는 사실에 살짝 아쉬운 마음마저 든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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