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급성골수성 백혈병 앓는 현지

생후 18개월…'천사'에게 웃음을 찾아주세요

이현지(가명) 양이 병원 침대에 누워 가만히 카메라를 보고 있다. 현지는 낯선 사람이 왔다갔다할 때마다 반짝이는 눈망울로 신기하다는 듯 빤히 쳐다본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이현지(가명) 양이 병원 침대에 누워 가만히 카메라를 보고 있다. 현지는 낯선 사람이 왔다갔다할 때마다 반짝이는 눈망울로 신기하다는 듯 빤히 쳐다본다. 우태욱기자 woo@msnet.co.kr

현지(가명'생후 18개월'여)의 몸 색깔은 빨갛다. 몸 전체에 피어 있는 열꽃 때문이다. 현지를 돌보는 간병인 홍효숙 씨는 "현지가 항암치료를 시작한 뒤부터 온몸에 열이 떨어지지 않고 성격이 예민해졌다"며 "이제 겨우 돌 지난 아이가 큰 병을 이겨내려니 얼마나 힘들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현지는 급성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다.

◆웃음이 사라진 아이

지난달 12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보호 의뢰가 들어왔다. 현지였다. 이웃 주민이 "아동학대를 당하고 있다"며 신고했다. 현지가 백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병원에서 학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가지 검사를 할 때였다. 현지를 맡고 있는 아동보호전문기관 허진혁 상담원은 현지의 첫 모습을 잊지 못한다.

"온몸에 멍투성이였어요. 팔과 다리는 물론 눈두덩에도 큼지막한 멍이 들어 있었어요. 누군가 때려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어린아이 경우엔 백혈병 때문에 멍이 들 수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그런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방치돼 있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죠."

현지는 아동보호전문기관의 도움으로 지난달 23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 소아암병동에 입원했고,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어른도 받기 힘든 항암치료였지만 현지는 꿋꿋이 잘 견뎌냈다. 하지만 열이 39℃까지 오르고 먹는 족족 토하는 등 이제 겨우 돌을 넘긴 현지가 견디기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치료였다.

현지를 돌보는 허 상담원과 간병인 홍 씨에겐 또 다른 걱정이 있다. 생후 18개월이라 말도 하지 못하는 현지가 겪는 육체적, 정신적 아픔이 평생 상처로 남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허 상담원은 현지가 입원 후엔 '잘 웃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현지의 치유 과정을 남기려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웃는 모습이 하나도 없는 걸 알게 됐어요. 현지 나이 때는 친한 사람이 다가가면 까르르 잘 웃는데 현지는 전혀 그런 모습이 없어요. 현지 마음에 큰 병이 생긴 건 아닌지 걱정이에요."

◆무심한 부모

낮에는 간병인 홍 씨, 저녁엔 현지의 아버지가 현지를 돌본다. 간병인은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병원에 무료간호서비스를 부탁하면서 파견됐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현지를 학대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현지의 아버지를 현지와 떼어놓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현지를 계속 돌보기엔 상담원, 간병인만으로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현지를 보호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과 병원 등 주변 사람들은 현지의 아버지가 보호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허 상담원은 "현지 아버지는 현지가 울고 있어도 안아준다거나 달래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며 "현지를 제대로 돌볼 생각이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현지 어머니는 베트남 사람이다. 현지 어머니는 베트남에서도 가장 외진 곳으로 알려진 지역에서 와서 통역조차 힘들었다. 현지 어머니는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결국 남편과 현지를 버리고 사라졌다. 현지가 입원한 뒤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의 도움으로 겨우 현지 어머니를 찾았지만 허사였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현지 어머니에게 현지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렸지만 문제만 생길 뿐이었다.

"현지 어머니가 돌발 행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현지 팔에 꽂힌 주삿바늘을 뽑더니 '베트남으로 데려가겠다'고 하시질 않나, 의사와 간호사를 붙잡고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피우기도 했어요. 오히려 현지의 치료에 방해될 정도였어요. 그러다 지난주에 갑자기 병원이나 저희 기관에 아무 말도 없이 또 사라지셨어요."

◆도움이 필요한 현지

병원에서는 "현지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말한다. 현지는 급성골수성 백혈병이라 골수이식이 아니면 치료하기 어려운데다 완치율도 20~30%로 낮기 때문이다. 골수이식의 경우 현지의 직계가족에서 찾아야 골수가 맞을 확률이 높은데 현지의 친가 쪽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고 외가는 베트남에 있기 때문에 공여받기가 어렵다. 결국 현지에게 맞는 골수를 가진 기증자가 나타나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현지의 백혈병이 다 나을 때까지 들어갈 비용을 대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초기 치료는 보건소의 소아암 환아 지원금을 통해 해결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현지의 백혈병 치료 기간을 1년 6개월~2년 정도로 보고 있어 더 많은 비용이 필요한 상황이다. 현지 아버지는 하던 사업이 실패하면서 1억2천만원 상당의 빚을 지고 있고, 현재 60만원 정도인 사무실 월세를 내기 어려울 정도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지의 부모가 간호에 적극적이지 않는데다 무료 간병인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현지를 돌보는 탓에 현지를 지속적으로 간호할 간병인 비용도 필요하다. 지금 지급되는 보건소 지원금은 치료비로만 사용할 수 있을 뿐 병원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비용으로는 전혀 쓸 수 없기 때문이다.

현지는 2, 3주 후에 1차 항암치료를 끝내고 한 아동보호시설에 입소할 예정이다. 현지를 학대했다는 혐의를 받는 현지 아버지 옆에 현지를 계속 둘 수 없다고 판단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대구시에 의뢰했기 때문이다. 현지를 지켜보는 허 상담원은 "어쩌면 현지에게 제일 필요한 것은 사람의 정"이라고 말한다.

"현지는 안아주면 평소보다 덜 보채고 좋아합니다. 조그마한 몸에 큰 바늘이 꽂혀 있는 것도 보기 안쓰러운데 부모조차 현지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게 더 안타까워요. 현지의 앞에 열릴 삶이 건강하고 행복해지려면 사람의 정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많은 도움이 필요하고요."

이화섭기자 lhsskf@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대구은행), 700039-02-532604(우체국)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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