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칼럼] 사물에 대한 겸손

작년 가을에 문을 연 스타벅스발 돌풍으로 미술관 주변의 낡은 건물들이 하나 둘 리모델링되더니 지금은 브랜드 커피 전문점들이 아예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뽐내는 모습들을 살펴보면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술관에서만 수용되던 현대미술의 발견들이 이젠 생활 깊숙이 침투해 왔음을 실감하면서 한편으론 신선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하는 작가들의 숙제가 더욱 커졌음을 느낀다. 여기 스타벅스엔 어린아이 키만 한 통나무를 3~4㎝ 두께로 켜서 판재로 만든 다음 그걸 별다른 마무리 없이 여러 장 천장에 매달아 두었다. 그리고 종로의 마천루에 문을 연 식당에 가보니 오래된 목선을 수입해 모두 해체한 다음, 목재들은 집성판으로 만들어 가구나 인테리어 자재로 쓰고 낡은 철물류는 장식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오래된 것들이 단지 복고적 취향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긴 세월, 자연이 다듬은 모양들이 그대로 현대적인 비례와 구성을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집이나 사물을 바라보는 자세가 이미 많이 변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집에선 이를 실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린 대부분이 집장사가 일률적으로 지은 아파트를 가능한 한 무난히 매매가 될 수 있는 기성품의 형태를 잘 유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나만의 선택과 안목을 구현하겠다는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관에서 사람들이 난감해하는 작품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에폭시나 방수제 같은 접착제를 마구 화폭에 흘려버린 작품이라든지, 막 채석장에서 캐온 듯한 다듬어지지 않은 돌덩어리들, 제철소에서 나와 대리점이나 공장으로 가야 할 물건이 잘못해 미술관 정원에 있는 것 같은 코일이나 철판들…. 도대체 이런 것을 작품이라고 내놓는 작가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 외면해 보지만 마음 한편엔 그들의 무성의와 무례함에 화가 치밀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현대미술을 하는 작가들의 마음 자세를 들여다보면 결코 사물에 대한 무례함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너무나도 겸손한 마음이 있기에 이런 작품들을 만들고 세상에 선보일 수 있는 것이다.

재현 미술 혹은 정교하게 계획된 형태의 미술을 하는 작가의 기본자세 속엔 세상에 유일한 존재로서 나를 드러내려는 매우 강한 자의식이 심리의 근저에 짙게 깔려 있다. 어떤 재료이건, 어떤 환경 속에서건, 작가의 의지만을 담아 형태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럴 경우 재료가 달라져도 유사한 형태의 결과물로 제작된다. 예를 들면, 인체를 재현하는 조각가라면 대리석으로 만들건 나무로 만들건 의도하는 동일한 형태를 구현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근사한 바로크풍 장식은 원목 소파에나 대리석 테이블에서나 동일하다.

하지만, 재료나 대상의 성질을 그대로 드러내는 조형을 하는 작가의 기본자세는 좀 다르다. 주변 사물의 가치를 '나'의 우월한 눈으로 내려다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나와 동일시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그것의 가치를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고 수용할 준비가 된다. 즉, 지금 있는 그 자체로 내가 만드는 것보다 아름다우며, 내가 발견한 사물의 성질이나 모습이 내가 애써 의도적으로 가공해서 만든 것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고 인정하는 겸손한 자세가 되어 있어야만 '선택과 최소한의 개입'이라는 방법을 통해 발견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인본주의적 가치도 실존적 인간애의 숭고함도 소중하다. 하지만, 나를 낮출 때 이제껏 보이지 않던 사물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세상과 나를 새롭게 관계 짓고, 우리가 보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깨우치게 해준다. 이런 이야기는 오늘날 인문학이 있는 곳이면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나는 학문과 모색이라는 실험적 영역을 넘어 우리 곁에 침투해 있는 작은 현상을 보았고,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의 삶이 어떻게 변할지도 기대된다. 하지만 매번 그랬듯이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들이 내 곁을 떠나 자본에 의해 왜곡되고, 마케팅의 대상으로 변질되어 공허하게 미디어들 사이를 떠돌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이두희/우양미술관 큐레이터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