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태아 지능발달 좋대서" 맹모 뺨치는 예비 엄마들

똘똘한 아기 낳기, 태교의 진화…어려운 수학문제 매달리고 영어·한자 공부

엄마와 아빠가 함께 참여하는 태교교실이 늘고 있다. 효성병원 제공
엄마와 아빠가 함께 참여하는 태교교실이 늘고 있다. 효성병원 제공

'애 떨어질라~.'

과거에는 아이를 가진 임신부는 자나 깨나 몸조심이 최고였다. 태교라고 해도 그저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우아한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이 다였다. 그러나 요즘 임신부들은 다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는 생각이 퍼지면서 국내뿐 아니라 해외 명소를 적극적으로 찾아 여행을 떠난다. '음악 태교'를 위해 이어폰 줄을 배에 두른 임신부도 등장했다. 배 속 아기의 두뇌발달을 위해 아기 대신(?) 수학 문제를 풀거나 영어와 한자를 익히기도 한다. 아기의 재능과 감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저출산과 고령 임신의 세태 속에 '맑고 건강한 아기'를 얻을 수 있다는 각종 태교(胎敎)법들이 등장해 사랑스러운 아기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태교 여행' 떠나요

결혼 3년차인 김진영(37)'강미영(34) 씨 부부는 지난여름 남양주에 위치한 산림교육원으로 여름휴가 겸 태교 여행을 다녀왔다. 첫 아이라 조심스러웠지만 요즘 유행하는 숲 태교 여행을 떠난 것. 이 부부는 이틀 동안 이곳에서 걷기, 이야기, 소리, 향기, 명상, 체조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힐링 태교를 할 수 있었다. 강 씨는 "임신 7개월이라 주로 휴식을 취했지만 도심을 벗어나 남편과 함께 푹 쉬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배 속에 있는 아기에게도 좋은 추억을 선물한 것 같아 즐거웠다"고 했다.

황정욱(45)'김소연(39) 씨 부부는 최근 일본 대마도로 태교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황 씨는 아내가 임신 6개월인데다 고령 임신이라 집에서 조용히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아내가 '몸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말해 대마도행 배에 몸을 실었다. '제대로 즐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떠난 태교 여행은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다. 요트나 스노클링 등 해양레포츠는 할 수 없었지만 에메랄드빛 바다를 바라보며 산책을 하고 태어날 아기에게 보여줄 사진도 찍으며 추억을 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신혼여행을 다시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2박 3일 일정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아기가 태어나면 세 식구가 다시 한 번 이곳을 찾기로 했다"고 했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해외 여행을 떠나는 임신부 고객들이 몇 년 새 부쩍 증가했다. 서영학 내일투어 대구지사장은 "과거에 비해 출산을 앞둔 부부들의 해외 여행이 늘고 있다. 비행시간이 짧고 편히 쉴 수 있는 일본과 태국, 그리고 필리핀'마리아나 제도(괌'사이판 등)가 예비 엄마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고 했다.

해외 여행뿐 아니라 서울 등지로 도심 속 태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멀리 떠나지 않고 도심에서 하루 이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호텔 패키지는 스파'테라피 등으로 '휴식과 태교'란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어서다. 호텔들도 맞춤형 패키지를 내놓는 등 임신부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랜드앰배서더서울이 마련한 '온리 포 마이 베이비' 패키지의 경우 숙박과 식사 이외에 유기농 보습 스킨케어 제품, 임신부를 위한 발네오 테라피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역시 '베이비문 패키지'를 선보였다. 유아 전문 제품을 사용한 객실이 마련돼 있고 세제, 방향제, 섬유유연제 등 유아용 제품을 선물하고 있다.

◆학습 태교

"Hi, my little angel. It's your mommy."(안녕, 우리 꼬마 천사. 엄마야.) 임신 6개월인 이현주(30) 씨는 요즘 태담(胎談)을 영어로 한다. 또 부른 배를 칠판 삼아 손가락으로 알파벳을 쓰며 배 속 아기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이를 위해 몇 달 전 '엄마가 쓰는 영어 문장 베스트 50'이라는 태교지침서를 구입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임신한 친구들이 영어로 태담을 한다고 해서 따라 하고 있어요. 학교 다닐 때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아마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을 거예요." 이 씨의 행복한 푸념이다.

종류도 많고 방법도 많지만 그래도 가장 핫(hot)한 태교는 학습 태교다. 아기의 건강만을 빌던 예비엄마들은 건강은 기본이고 '장차 우리 아이가 똑똑해야 할 텐데'라는 마음으로 적극적이다. 가르치는 과목과 방법에 따라 종류도 다양하다. 수학 태교, 영어 태교, 명화 태교, 음악 태교, 태담 태교, 동화 태교, 호흡 태교, 바느질 태교…. 이름은 다르지만 목적은 비슷하다. 이 씨처럼 영어로 태담을 하는 수준은 약과다. 심지어 수학을 배 속에서부터 가르친다며 극성을 부리는 임신부도 있다. 그래야 아이의 머리도 좋아지고 집중력도 좋아진다고 한다. '수학의 정석'(수학 참고서)을 붙들고 씨름하는 예비엄마도 있다. 이 씨와 같은 산부인과에 다니는 박미영(30) 씨도 '아이의 99%는 엄마가 만든다'는 육아서의 지침에 깊은 감명을 받고 학습 태교에 나서고 있다. 임신 3개월째. 서점에서 수학 문제집을 구했다. 고등학교 수학은 좀 버거울 것 같아 중학교 참고서를 샀다. 물론 오래가지 않았다. 학창시절부터 수학에 자신이 없었던 터라 '집합' 문제부터 막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영어'수학 태교의 효과에 대해서는 고개를 젓고 있다. 대구의 한 산부인과 원장은 "실질적인 효과는 없다. 엄마들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히려 태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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