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家和萬'社'成…"가정이 행복해야 기업이 산다"

가족친화경영 나서는 지역 기업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 오래전 한자성어이지만 지금도 우리 생활 깊숙이 위력을 발휘하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직장인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1인당 연간 근로시간은 2천116시간(2011년 기준)으로 OECD 평균(1천696시간)보다 420시간 더 많다. 그런데도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구매력평가 기준 26.2달러(2012년 기준)로 OECD 평균의 67%에 불과하다. 직장인들이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고 있는 셈이다.

다행히 최근 직장인들이 '컴백홈'(?)하고 있다. 가족친화경영에 눈뜬 기업들이 늘고 있어서다. 직원과 그 가족을 챙김으로써 직원의 충성도와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전략이다.

◆가정이 행복해야 기업이 산다

대구은행 직원들은 수요일 오후 6시 30분이 되기 전 퇴근 준비로 분주하다.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시간에 퇴근시간을 넘겨 남아 있다간 어떤 불이익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시에 퇴근해야 한다. 화목한 가정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도록 용인되는 '칼퇴근'이다. 이 은행 백상헌 차장은 "수요일이면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영화, 연극 등을 관람하거나 근교로 나가 전통찻집, 허브농장, 갤러리 등을 찾는다.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되고 특히 전업 주부인 아내가 너무 좋아한다. 아이들도 주말보다 수요일을 더 기다린다"고 했다.

성서산업단지 태창철강의 경우 직원 가족에게 문화공연 관람티켓을 주고 정기적으로 부부 동반 모임을 여는 등 가족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다. 이 회사 한상철 경영기획실장은 "건강한 가정이 건강한 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게 회사의 경영방침이다. 임직원들이 참여하는 신년음악회를 열고 회사에 공연장을 마련했다. 또 오페라하우스 등 대구에서 열리는 뮤지컬이나 공연 등의 티켓을 단체로 예매해 직원들에게 무상 배포하고 있다"고 했다.

대성에너지 직원들은 늘 활기차다. 회사에서 직원의 건강을 생애주기별로 지원'관리해주기 때문이다. 월 1회 보건관리대행, 절주 및 금연캠페인, 힐링을 통한 스트레스 관리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배우자도 똑같은 혜택을 누린다. 패밀리데이'가족사진콘테스트 공모전 등도 수시로 열린다. 올해는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기업'으로 인증 받았다. 이 회사 박종률 본부장은 "행복한 가족이 곧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이라는 점을 확신한다. 기업과 가족의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2011년 대구에서 최초로 가족친화인증기업에 선정된 ㈜에스엘 직원들도 매주 수요일 가정의 날 및 리프레시 휴가를 받을 수 있다.

◆'행복한 가정' 위해 공권력 동원

공공 부문에서도 '가족친화적 조직 운영'이 본격 도입됐다. 일부 기관은 공권력(?)을 동원하기도 한다. 대구도시철도공사는 직원들에게 진정한 '신의 직장'이다. 2010년부터 가족친화적 맞춤형 프로그램인 9to5 근무제, 시차출퇴근형 탄력근무제를 도입했다. 직원들과 가족은 모유착유실을 이용할 수 있고 영화관람, 가을음악회, 프로야구 단체관람 등을 무료로 즐길 수 있다. 직원은 물론 가족이 입원해 있으면 위문품이 전달된다. 수험생을 둔 자녀들에게는 합격을 기원하는 선물이 배달된다.

특히 전국 공기업 최초로 생후 1년 미만의 자녀를 가진 여직원을 대상으로 1시간 빠르게 퇴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9to5 근무제와 초등학생 이하 자녀양육 및 가족 간호를 위해 출퇴근시간을 하루 8시간 근무 내에서 자유롭게 결정하는 시차출퇴근형 탄력근무제는 공사가 자랑하는 가족 친화 경영이다. 입사 8년 차인 이지윤(32) 씨는 "아이를 낳았을 때 내의를 선물 받았다. 특히 육아휴직 후 복직했을 때 부서에서 축하 이벤트가 벌어졌다. 눈물이 났다"고 했다. 류한국 사장은 "오늘날 우리 사회문제는 모두 가정의 힘이 쇠약해지면서 발생한 것이다. 직원들은 모두 내 가족이라는 생각에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고 했다.

2010년 대구경북에서는 유일하게 여성가족부로부터 가족친화기관으로 인증받은 달서구청은 이듬해 5월 여성가족과도 신설해 여성정책을 전담하도록 했다. 가족어울림축제나 가정 내 양성평등 실천 사례 수기 공모전인 '이 남자가 사는 이야기' '아버지 요리교실' 등이 수시로 열린다.

대구시는 제 시각 귀가를 재촉하기 위해 미 준수 부서장과 근무자에 경고 조치하는 방법을 도입했다. 또 해양경찰청, 서울'광주시의 경우 구내식당에서 저녁을 제공하지 않는다. 저녁식사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라는 의미다. 전북도는 인터넷을 강제 차단하고 있다. 대전시는 가족의 날이 시행되는 매주 금요일 오후 6시 30분 강제 소등이라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가족 사랑 아이디어 봇물

남구청 직원들은 주말마다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음악동호회를 비롯해 국토기행, 등산클럽, 관람동호회'수석회'야구'축구'탁구동호회'바둑'온라인게임 등 다양한 동호회가 활동 중이다. 구청이 예산을 지원하는 다양한 여행'레저 프로그램이 있어 입맛대로 고르기만 하면 된다. 탄력적 근무제, 출산 지원, 직장 어린이집 운영, 자녀학자금 지원, 정시 퇴근 장려, 매주 수요일 가정의 날 행사 등 남들이 다하는 이벤트나 제도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다.

이처럼 근로자가 직장과 가족 영역의 일을 조화롭게 병행할 수 있도록 이색 아이디어가 잇따르고 있다. 태창철강의 경우 문화체험 활동을 원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연극'뮤지컬 등 매달 1회 무료 관람권을 지원한다. 또 직원들에게 강아지를 무상으로 분양하기도 한다.

대구시는 문학을 통한 가족친화 경영에 나서고 있다. 중앙도서관을 주 1회 방문하게 하거나 대구보건대학 유아체험도서관을 활용해 직원가족들의 독서활동 및 다양한 체험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기업이 갖고 있는 전국 네트워크 인프라를 가족친화 프로그램에 접목한 스마트워킹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IT 기업도 있다. 음식 프랜차이즈 업체인 '바뷔취'는 직원뿐 아니라 가족 모두 참여하는 가족친화 프로그램인 각종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관련 기관도 적극적이다. 여성가족부는 매주 수요일을 '가족사랑의 날'로 정하고 이날은 정시 퇴근하여 가족과 함께하자는 캠페인을 12월 말까지 펼치고 있다. 이달에는 정시퇴근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SNS 사진공모전과 정시퇴근 서포터스를 운영하고 있다.

대구시도 지원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대구시 이영선 사회복지여성국장은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한 가족친화경영은 선진기업으로 가는 지름길로 앞으로 가족친화인증제를 활성화해 많은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가족친화경영이 화두가 되고 있는 것은 효과가 입증됐기 때문이다. 2011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가족친화 경영지수가 1단위 증가하면 1인당 평균 매출액은 약 0.4% 증가하고, 근로자의 이직률은 0.23% 감소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친화적인 직장문화는 근로자의 만족도를 높이고 이직률을 낮춰 기업의 성과를 끌어올려 주고 있다. 삼일회계 법인 최창윤 이사는 "조직 충성도와 업무 몰입도가 높은 기업을 조사해보면 공통점이 바로 가족친화경영이다. 직원의 가정을 챙기는 일은 단기적으로 부담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성 향상과 높은 업무 성과로 이어진다"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가족친화인증제='일과 가정의 조화로운 균형'을 통해 직원의 삶의 질을 높이고, 기업의 생산성 향상 등을 도모하는 가족친화제도를 모범적으로 도입'운영하는 기업을 평가해 여성가족부가 인증하는 제도다.

탄력적 근무제도, 자녀 출산'양육 및 교육지원제도, 부양가족 지원제도 등을 평가하며 인증기간은 3년이다. 대구에서는 올해 대구시를 비롯해 대성에너지㈜, 대구도시철도공사, 남구청, 세계실업, 떡파는 사람들, 덕산코트랜, 삼영이앤티, 세일앰보 등 10곳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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