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사만어] 시인의 추문

영국 '3대 낭만파 시인' 중 한 명인 퍼시 B 셸리는 1812년 한 여성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나는 날카로운 발톱을 가진, 무서운 남자라는 동물입니다. 그렇더라도 동물 중에서 얌전한 놈이라서 고기를 일절 먹지않고 태어난 후 단 한 번도 으르렁거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큰 맘 먹고 당신의 눈앞에 달려나왔습니다.'

'연애편지의 백미'로 불리는 유명한 구절이다. 당시 셸리는 어린 아내와 딸을 둔 유부남이었지만, 젊고 매력적인 여성들을 유혹하는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품위있고 격조 높은 시적 언어를 '여자 사냥'의 도구로 활용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1814년 그는 두 번째 아내가 되는 메리와 사랑에 빠져 유럽여행을 떠나면서 아내 해리어트에게 이런 편지로 결별을 통보했다.'내게는 잘못이 없다. 당신은 자상한 열정으로 내 가슴을 채워주지 못했다.' 초일급 에고이스트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편지다. 그는 순수 낭만주의 시를 문학사에 우뚝 세웠지만, 여성들에게는 첫 번째 아내를 포함해 2명의 여성을 자살로 몰고간 '흡혈귀'와 같은 존재였다.

그의 친구이자 또 다른 낭만파 시인인 조지 G 바이런도 유명한 탕아였다. 선천적인 기형으로 다리를 절면서 어릴 때부터 마음이 비뚤어져 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그는 친구들에게 1818년 9월부터 2년6개월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보낸 생활을 이렇게 털어놨다. "이 여자 저 여자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적어도 200명, 아니 그 이상의 여자를 사서 동침했다." 그는 이복 여동생과 연인 관계였을 정도로 이성관계가 문란했다.

자유로운 영혼과 섬세한 감각을 가진 시인들이 기행과 일탈 행위를 자신들만의 전유물로 삼던 시대가 분명 있었다. 예전 유명한 한 시인은 여성을 가리지 않고 동침한 것으로 유명했다. 한국 시단의 최고봉이라는 찬사와 함께 '잡놈 중의 잡놈'이라는 비아냥이 함께 따라다녔다고 한다.

최근에는 영화 '은교'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70대 노시인과 17세 여고생 간의 사랑이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 노시인은 세상의 상식을 극복하지 못한 채 정신적인 짝사랑으로 끝을 맺고 만다. 그런데 얼마 전 대구의 한 유명 시인이 제자인 여중생을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시대 흐름에 따라 문인(文人)들의 가치관도 바뀌어야 하는 법인데, 그는 그렇게 하지 못한 것 같다. 시인이 지적이고 낭만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직업이라면 그에 걸맞은 품격과 도덕성을 갖춰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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