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 광장] 멘토링 인플레, 변형된 엔터테인먼트

가히 멘토의 전성시대다. 온갖 영역에서 멘토라는 말을 사용한다. 돌아서면 듣는 멘토라는 말, 멘토란 무엇이냐고 여기저기에 물어봤다. 누구도 속시원히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네이버에 물어봤다. 시사상식 사전에는 멘토를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의 의미로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멘토의 유래가 참 재미있다. 사전의 설명이다.

'멘토'라는 단어는 '오디세이아' (Odyssey)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의 충실한 조언자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집안 일과 아들 텔레마코스의 교육을 그의 친구인 멘토에게 맡긴다. 오디세우스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10여 년 동안 멘토는 왕자의 친구, 선생,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아 주었다. 이후로 멘토라는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즉, 멘토는 현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상담 상대, 지도자, 스승, 선생의 의미이다. 멘토의 상대는 멘티(mantee) 또는 멘토리(mentoree), 프로테제(Protege)라 한다.

우선, 멘토가 누군가의 이름이었다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롭다. 게다가 아버지 역할을 해줄 만한 사람이 멘토였다는 것은 무게감이 만만찮다.

그런데 요즘은 멘토, 멘토링이라는 말을 너무나도 가볍게 쓰고 있다. 조언, 충고, 자문, 나아가 컨설팅 등을 조금 더 있어보이게 하는 단어로 멘토링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힐링'이라는 단어와 함께 멘토링은 책이나 강연을 잘 팔기 위한 상당히 좋은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시대의 소위 멘토들은 기득권으로서, 지금의 세상을 구축한 기성세대로서, 사과나 책임없이 "니가 부족하니까" "덜 아파봐서 그렇다", 혹은 "가열찬 노력을 하지 않아서 그 모양이다"라며 독설을 날리거나 "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며 인심 좋은 얼굴로 따뜻한 척 말을 건넨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병주고 약주기 식의 멘토장사가 꽤나 잘된다는 데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는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법이다. 어떤 수요일까?

요즘 학생들은 시험기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마음이라도 편하려고 학교에 간다. 학교에 가서 소소하게 논다. 차라리 학교 밖에서 화끈하게 노는 것이 나을 수도 있는데,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 학교에서 논다. 자신의 심리적 알리바이를 만드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지점이 멘토링이라는 이름의 강의, 책 등을 소비하는 것이다. 그냥 놀면 불안하니까 강연장에 몰려가서 시덥잖은 이야기를 들으며 깔깔거리며 웃으며 위안을 받고 현실로 돌아온다. 현실에서는 치열하게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닌 멘토들이 써놓은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잠시동안의 들뜬 기분을 느끼고 즐긴다.

엔터테인먼트의 변형이다.

놀면 불안하고 뒤떨어질 것 같으니까 불안한 마음을 덮어줄 수 있는, 그러니까 '난 강연을 듣고 책을 봤어'라는 알리바이를 만들어줄 수 있는 수요가 탄생한다. 물론 효용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꼭 생산적인 것만이 중요하고 소중한 법은 없다. 소비형 엔터테인먼트는 엔돌핀을 돋게 해주고, 현실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멋진 역할을 해준다. 그러한 목적으로 멘토들을 쫓아다닌다면 모를 일이지만, 청년들이 멘토들을 팔로잉하는 이유가 인생의 변화, 성장, 혁신 등이기 때문에 문제는 달라진다. 멘토는 내 삶을 살아주지 않는다.

또한 트로이전쟁 시절의 멘토는 오디세우스의 아버지 역할을 해줬고 인생의 조력자로서 함께 했지만, 지금의 멘토는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도 않는다. 현재 한국의 멘토들은 청춘들의 불안을 제대로 활용하며 영혼을 파고들고 있다.

인생의 가장 좋은 멘토는 '경험'이다. 부딪히고 깨지면서 그것을 복기하고 다시 일어서는 출발점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나를 멘토링하는 것이다. 경험을 할 기회를 주고, 좋은 결과에 도달하도록 한 번씩 조언해주고, 지긋이 지켜봐주는 것, 이것이 바로 어른들이 해야할 일이고, 멘토라고 불릴 수 있는 순간이다. 약 파는 것이 아니고.

전충훈/대사연 협동경제사업단 전략사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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