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강성률의 줌인] 관객 2억 돌파…아빠 영화 & 남성 배우 전성시대

2013년 영화계 10대 뉴스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벌써 올해 마지막 원고를 작성하고 있다. 2013년도의 마지막 주가 된 것이다. 이맘때가 되면 언제나 그런 것처럼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돌이켜보면, 2013년 한국 영화계는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다. 영화계의 규모도 커졌고 좋은 일도 많았다. 그러나 여전히 스크린 독과점과 같은 문제는 산적해 있다. 마지막 원고는 2013년 영화계 10대 뉴스를, 다소 주관적인 시점에서 작성해 보았다.

1. 총 영화관객 2억 명 돌파

올 한국영화계의 가장 큰 뉴스는 누가 뭐라고 해도 총 영화 관객이 2억 명을 돌파했다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전까지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생각지도 못했던 기록. CGV가 영국 리서치업체 스크린다이제스트 자료를 분석한 것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당 평균 영화관람 횟수는 4.12편으로 미국의 3.88편을 앞질러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제 영화는 대한민국 국민들의 대표적인 오락이자 여가이자 예술이 된 것이다.

2. 정치적 영화의 범람

특이하게 올해는 정치적인 영화가 많았다. 여기서 말하는 대상은 정치 영화가 아니라 정치적 영화이다. 그러니까 정치적 소재를 다룬 정치 영화가 아니라 특정 소재를 정치적으로 다룬 '정치적 영화'를 말한다. '설국열차' '더 테러 라이브' '감기' '관상' '변호인' 등 많은 영화가 현재 우리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제를 다루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영화들이 어마어마한 흥행을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영화계의 지난 1년도 정치적인 이슈와 깊은 관련이 있었던 해였다.

3. 아빠의 시대, 아빠 영화의 붐

2013년 키워드 가운데 하나는 아빠였다. 아빠가 영화를 넘어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던 해. TV의 '아빠 어디 가?' 붐과 거의 동시에 발생한 '7번방의 선물' 돌풍은 지금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아빠 상을 제시했다. 돈만 벌어오는 아빠가 아니라 친구처럼 다정한 아빠. 이후 영화에서 아버지는 항상 존재했다. 아들과의 약속 때문에 뛰어다니는 '러닝맨'에서부터 아버지의 쓸쓸한 이야기 '전설의 주먹', 가족의 복수를 하려는 '용의자', 자식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려는 '변호인'에 이르기까지 아버지가 핵심을 이루었다.

4. 신인 감독 전성시대

유난히 신인 감독의 활약이 돋보였다. 무엇보다 신인 감독의 영화 중 흥행에 성공한 영화가 많았다. '연애의 온도'의 노덕, '감시자들'의 김병서, '더 테러 라이브'의 김병우, '숨바꼭질'의 허정, '변호인'의 양우석 등이 모두 신인이다. 장르도 다양하고 비평적 평가도 좋았다. 이 가운데 몇 편은 영화적 리듬의 조율과 영화적 통제에서 신인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어 한국영화의 미래를 밝게 만들었다.

5. 배급사 NEW의 활약

상반기 결산 때 이미 적었던 것처럼 올해는 배급사 ㈜넥스트엔터테인먼트(NEW)의 해였다. 상반기에만 '7번방의 선물' '신세계' '감시자들' 등을 개봉하더니 하반기에도 '숨바꼭질' '변호인' 등을 개봉하면서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다른 대기업 계열의 투자 배급사처럼 극장 라인을 갖고 있지도 않고 자금력도 탄탄하지 않지만, 빠른 의사 결정과 개봉 시기의 조율, 무엇보다 예민한 대중적 감식력으로 일구어낸 성과였다. 이들의 내년 활약이 기대된다.

6. 중견 감독의 복귀

신인 감독의 왕성한 활약 못지않게 반가웠던 것은 중견 감독들의 대거 복귀였다. '감기'의 김성수, '친구2'의 곽경택,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의 장준환, '소원'의 이준익 등이 오랜만에 복귀해 흥행에서도 고른 활약을 선보였다. 특히 김성수 감독과 장준환 감독은 10년 만에 충무로에 복귀해 반가움이 더했고, 이준익 감독은 상업영화 은퇴 선언 후 복귀해 흥행까지 하면서 팬들에게 기쁨을 선사했으며, 곽경택 감독은 계속된 흥행 실패 이후 흥행에 성공해 보기 좋았다.

7. 3D 영화의 둔화

2013년은 3D 영화의 운명을 예시하는 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비관적으로 이야기하면, 앞으로 한국산 3D 영화를 보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흥행 불패 신화'의 김용화 감독이 120억원을 투자해 만든 '미스터 고'가 처절한 흥행 실패를 한 이후, 3D 영화를 제작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전반적인 3D 영화 시장도 작아졌다. 가령 2012년의 '어벤져스'의 3D 관객 점유율은 19.8%였으나, 올해 '아이언맨 3'는 11.4%에 불과했다. 신기한 구경거리로서의 3D 영화에 대한 수요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고, 3D 영화에 맞는 영화 문법도 아직 제자리를 찾기 못하고 있다.

8. 북한 스파이 영화의 붐

2013년의 정말 특이한 현상은 북한 스파이를 소재로 한 영화가 대거 등장했다는 것이다. '베를린' '은밀하게 위대하게' '스파이' '붉은 가족' '동창생' '용의자' 등이 모두 그러하다. 흥미로운 것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북한 스파이, 즉 간첩은 이념 때문에 간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때문에 마지 못해 간첩 활동을 하는데, 결국 이들은 남한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북한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양쪽에서 버림받아 죽거나 떠난다는 것이다. 아마도 분단의 극한 시대를 영화는 이렇게 보여주는 것 같다.

9. 한국 감독의 해외 진출

박찬욱 감독과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 봉준호 감독의 국제적 프로젝트 진행. 감히 꿈에만 그리던 일들이 2013년에 발생했다. 박찬욱은 '스토커'를 통해 독창적인 B급 스타일의 영화를 선보였고, 김지운은 '라스트 스탠드'로 하이브리드 장르의 묘한 매력을 보여주었지만, 아쉽게도 흥행에서는 실패하고 말았다. 반면 봉준호는 한국이 중심이 된 글로벌 프로젝트 '설국열차'로 논쟁의 중심에 서면서 최고의 해를 보냈다. 이들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10. 남성 배우의 전성시대

2013년만큼 남성 배우들이 두각을 보인 적이 있었던가? '7번 방의 선물'로 류승룡은 확고한 주연이 되었고, '베를린'과 '더 테러 라이브'의 하정우는 가장 인기 있는 배우이자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었으며, '신세계'와 '전설의 주먹'의 황정민은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준 해를 보냈고, '감시자들' '소원'의 설경구는 여전히 그가 톱 배우임을 입증했으며, '레드'의 이병헌은 해외영화에 출연한 배우 가운데 속편을 만들 정도로 인지도를 확고히 했고,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의 송강호는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해를 보냈다. 반면 '집으로 가는 길'의 전도연을 제외하면 여성 배우들의 활약이 그리 돋보이지 않은 점은 아쉽다.

강성률 영화평론가,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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