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 우물을 파라'고 했다. 한 가지 전문기술만 있으면 먹고사는 데 문제없다는 이유에서다. 세상이 바뀌었다. 요즘은 일할 곳을 찾아다니며 여러 곳에 문을 두드려봐야 한다. 진대식 씨는 만능재주꾼이다. 지금까지 명함에 새긴 직업만도 인쇄소 직원, 외판원, 가수 매니저, 밤무대 사회자, 가수, 수필가, 가요작사가, 만담꾼, 행사장 MC 등 10여 가지가 넘는다. 사람들은 그를 만나면 "정확한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다양한 '끼' 발휘
옛 가수 중 영천 출신 왕평이란 사람은 가수, 작사가, 연극배우, 극작가, 만담가로 활동한 전천후 엔터테이너였다고 한다. 현대판 왕평이 대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KT에서 명예퇴직한 진대식(57'대구 서구 내당동) 씨다. 그는 왕평의 분신이라고 해도 흠잡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끼'를 발휘하는 만능재주꾼이다.
진 씨는 동글동글한 얼굴에 눈웃음을 머금은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다. 전화가 귀한 시절, 전화수리공으로 근무한데다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며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 사근사근한 성격에다 붙임성이 있어 진 씨의 얼굴을 보면 '아하! 이 사람'이라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재주 많은 사람이 큰돈 못 번다'는 말이 있듯이 그는 수많은 직업을 거쳤지만 크게 성공한 분야는 없다. 오랫동안 KT에서 근무해오다 퇴직한 후, 자신이 가진 끼를 발휘하고 있다. 부지런한 성격에다 남 도와 주는 것을 천성적으로 좋아해 봉사활동에 열성적이다. "내가 필요한 곳이라면 달려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 천직인 것 같다"고 한다.
◆학창시절부터 '명물', 가수로 데뷔도 했었지만…
진 씨는 경남 합천 출신이다. 대구 협성고에 진학한 후 방송반에서 활동하면서 개그맨의 끼를 키웠다. 교내 명물로 소문나면서 인근 학교와 단체에서 사회를 맡아 달라는 요청이 쇄도할 정도로 인기였다. 고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대구 문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시민특기자랑'에 출전해 구두닦이 흉내를 내는 원맨쇼로 대상을 받았다. 그 길로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
고교 졸업 후 서울의 한 레코드회사가 주최한 신인가수 선발대회에 도전, 1등을 해 가수로 데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길은 험난했다. 금방 성공할 것 같았으나 되는 것이 없었다. 너무 일찍 겉멋만 들어버렸다. 궁핍한 생활이 시작됐다. 공장 근로자, 인쇄소 직원, 외판원, 가수 매니저, 회관과 극장 쇼 사회자, 노점상, 행상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머리를 빡빡 깎고 계명대학교 캠퍼스에서 대학생 흉내를 내며 취업공부에 매달렸다. 1980년 한국통신(현 KT)에 응시했다. "합격만 시켜주면 열심히 일하겠다"고 매달려 대구전화국에 전화 가설공과 고장수리 기사직에 합격했다. KT에 입사한 후 '사랑의 봉사단' 단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틈틈이 가요작사도 했다. 가수 김연자의 '우체부 아저씨', 대구 출신 가수 김동아의 '빨간 공중전화' 등 KT와 관련된 노랫말을 만들어 가수들에게 선물했다. '팔공산 갓바위'란 노랫말도 만들어 음반을 제작하기도 했다. 1990년 문화방송 TV 프로그램 '세상 사는 이야기-동네 코미디언의 꿈'에 출연하면서 그의 숨은 재주가 세상에 알려졌다. 방송이 나간 후 여러 축제장에서 사회를 맡아달라는 요청이 왔다. 대구약령시 축제, 합천 오광대축제, EXCO 모터사이클 경기대회 등 지역축제행사나 종친회, 체육대회, 사원단합대회 등에서 사회자로 활동했다. 인생역전에 성공했다.
◆경로잔치'자선공연…근무했던 회사서 사원대회 초대도
지난해 10월 KT 대구지사에서 명예퇴직했다. KT에서 사랑의 봉사단으로 활동한 것을 바탕으로 '진대식 나눔봉사회'를 결성하는 등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봉사활동에 자신의 끼를 발휘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신바람이 났다. 50여 명의 회원들과 함께 군부대와 양로원, 교도소, 소년원, 경로잔치, 합천 원폭 피해복지관, 달성공원 무료급식, 농어촌 일손돕기, 지체장애인 돕기, 환경미화원 돕기, 산사음악회, 일일찻집, 소년소녀가장 돕기, 고령 들꽃마을 자선공연, 무료 이발봉사, 거리 자선공연 등 어디든지 달려갔다.
그는 요즘 청년 때의 기질을 살려 연예기획 이벤트사를 차려 공연팀을 만들어 경로잔치, 음악회 자선공연 등을 한다. 공연에서는 코미디, 만담가로 활동하고 사회를 맡기도 한다. 지난해 말에는 자신이 근무한 KT 동우회 패밀리 교육에 초대돼 전국에서 참석한 KT 사원들에게 구수한 입담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띄우는 등 동료애를 과시했다. 자녀들도 훌륭하게 키웠다. 큰아들 동영 씨는 서울의 고등학교 국어교사다. 작은아들 동환 씨는 영천시 공무원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봉사활동이지요. 물질보다는 마음을 보태는 것이 진정한 이웃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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