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카드, 농협카드, 롯데카드 3개 가운데 나는 2개를 갖고 있다. 불안한 마음에 카드사 홈페이지를 찾았다.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주민번호를 넣고 공인인증서 확인 절차를 거치자 개인 정보 가운데 유출된 항목이 떴다. 15개나 됐다. 성명, 주민번호, 카드이용실적금액, 직장주소, 직장전화, 직장정보, 카드결제계좌, 카드결제일, 휴대전화, 자택주소, 자택전화, 주거상황, 카드신용등급, 카드신용한도금액 등이다. 나보다 유출 항목이 더 많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발가벗고 거리를 다니는 거나 같아 영 찝찝하고 불안하다.
솔직히 검찰의 발표가 나고서도 무감각했다. 세상이 온통 난리가 났다는데도 그러려니 했다. 한마디로 무신경했다. 설마 내게 무슨 일이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카드런'이라고 해도, 재발급이니 해지 사태가 벌어져도 그랬다.
나의 무신경과 무감각에 경종을 울린 것은 현오석 경제부총리의 말이었다. 그는 지난 22일 경제장관회의 직후 "금융 소비자도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다 정보 제공에 동의해 줬지 않느냐"고 했다. 귀를 의심했다. 금융 정책 총책임자의 입에서 나와서는 안 될 말이었다. 그는 '카드대란'이라는 중대 사태의 원인과 본질 그리고 대책까지 모두 헛다리를 짚고 있었음에 틀림없었다. 왜 사단이 났는지, 시중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왜 1천만 명 넘게 정보 유출 여부를 확인하고, 왜 500만 명 넘게 카드를 재발급받겠다고 아우성치며 줄을 서고, 해지도 못 미더워 회원 자격마저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고민도 해 본 것 같지 않았다.
금융은 신뢰라고 한다. 신뢰가 무너지면 신용은 서 있을 자리를 잃는다. 신용이 무너지면 답은 뻔하다. 사람들은 금융기관과 경제 정책 당국에 신뢰를 접으려 한다. 2차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떠들어대는데도 그 말을 믿지 못한다. 카드사와 은행 창구에 불이 났다. 문의 전화도 수용량을 넘겨 폭주하자 불통이 돼 버렸다. 직접 창구를 찾는 이들의 줄은 줄어들지 않는다. 창구 직원과 전화 상담사들은 고객들의 불만과 하소연을 듣느라 죽을 맛이다. 이번 사건은 전적으로 금융기관의 무감각, 부주의의 산물이다. 억울한 금융 소비자 책임을 언급할 일이 아니었다. 현 부총리는 "카드 발급 신청을 직접 해 보기라도 했는가"라는 지적을 받아도 싸다. 물론 다른 '나으리'들도 더 나을 게 없다. 오십보백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중에는 불법 유출된 정보가 넘쳐난다. 건당 10원대에서 비싼 것은 몇만 원까지 팔린다고 한다. 개인 신상에서 금융 정보는 물론 외부로는 절대 알려져서는 안 될 개인 병력(病歷)까지 돈으로 교환된다. 괜히 대리운전, 인터넷, 통신사, 보험사 등에서 전화가 오는 게 아니다. 정보가 돈이라는 말은 진부하다. 이게 악용되면 사람도 죽이고 가정도 파괴한다. 그 피해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소비자보다는 금융기관 봐주기에 가깝다.
서민들은 억울하다. 필요한 정보라고 요구하는데 거부할 재간이 없다. 부총리급 정도나 되면 금융기관에 정보 제공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 몰라도 서민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급전이 필요해서든, 사탕발림 경품에 눈이 멀었든 정보제공 요구에 응하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 정보 관리를 잘못했다고 욕을 먹으니 말이다.
길바닥에서 대형마트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카드 발급 행사는 제지를 받지 않는다. 수십 장의 카드 발급 신청서를 들고 다니는 외판 사원들의 몫도 무시하지 못한다. 개인 금융 정보는 이런 환경에서 공개된 상태로 불안하게 돌아다닌다. 현실을 보고도 가만있다면 총체적인 감독 부실, 관리 부실이다. 아예 감독과 관리 '부재'에 가깝다. 금융 감독 기관이 아니라 비호 기관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겠다.
이 과정에서 개인 정보가 새나갔다면 누구 책임인가. 몇 푼 되지도 않는 경품에 혹해서 정보를 '순순히' 제공한 사람을 탓해야 하나. 자녀 학원비나 반찬값이라도 마련하려고 나온 카드 판촉 아주머니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나. 무차별 마케팅에 나선 카드사의 책임인가. 이런 현실을 눈감고 못 본 체한 정부 책임인가.
당장 지갑 속 카드를 꺼내 확인해 보라. 신용을 잃은 여러분의 '신용' 카드는 안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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