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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서각의 시와 함께] 시인 정일근(19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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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줄 잘 빚어놓고

마침표를 찍을 것인지

마침표를 지워버릴 것인지

오래 고민하는 시간이 있다

시가 문장부호 하나에

무거워할 때가 있다

시가 문장부호 하나에

가벼워질 때가 있다

그걸 아는 이가 시인이다.

-시집 『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문학과지성사, 2009.

회갑을 지나면서 서각(鼠角)이란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쥐뿔도 모른다, 쥐뿔도 없다, 쥐뿔도 아니다'라는 뜻이다. 옛사람들이 아호를 지을 때 어리석다(愚)는 뜻, 바보라는(痴) 뜻의 글자를 즐겨 씀을 본받아서다. 옛사람들이 아이 이름을 지을 때 귀한 아이일수록 소똥이니 개똥이니 하는 천한 이름을 붙임과도 같다. 예로부터 이름은 낮게 지을수록 좋다고 여겼다. 우리 선조들의 이름 짓기는 반어적이라는 전통이 있다.

어느 날 정일근 시인을 만났다. 다짜고짜 '쥐뿔'을 능가할 호를 지었으니 감수를 해 달라는 것이다. '약똥'이라 지었다고 했다.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멸치 똥'이라는 것이다. 아내와 같이 멸치를 다듬다가 문득 떠올랐다고 했다. 그의 너무나 보잘것없는 호에 그만 졌다고 항복했다.

「시인」은 정일근 시인의 시로 쓴 시론이다. 시는 짧은 형태의 글 속에 많은 의미를 담는 글이다. 그래서 글자 하나 더할 수도 뺄 수도 없는 단단한 구조, 금강석과 같은 분자구조를 지닌 단단한 시가 좋은 시다. 그런 시라야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형되거나 훼손됨 없이 온전한 형태로 남는다. 마치 금강석이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형태를 잃지 않는 것과 같다. 세상에 흩어진 수많은 언어 가운데 시인이 찾아내어 갈고닦은 언어가 고전이란 이름으로 시공을 초월해서 전해진다. 모름지기 시인은 고전을 창작한다는 자세로 시 쓰기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 시는 그런 시인의 자세에 대한 시인 자신의 다짐이리라.

권서각 시인'kweon51@cho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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