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중의 메콩칼럼] ③베트남 내 다문화 가정과 언어생활

베트남을 방문한 최초의 한국인은 누구였을까? 사료에 의하면 임진왜란에 이은 정유재란(1597~98) 당시 진주출신의 조완벽(趙完壁)이란 선비가 일본 무역상들에게 노예로 팔려 당시 안남(安南,베트남)까지 다녀왔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뛰어난 한문실력으로 일본과 베트남간 무역거래를 도울 수가 있었는데 그가 처음 찾아 간 베트남에서는 지봉유설로 유명한 조선중기 실학 선구자, 이수광의 한시가 널리 유행되고 있었다고 한다. 그 곳에서 조완벽은 이수광과 같은 조선사람이라는 이유로 베트남 고관들로부터 여러 차례 걸쳐 극진한 환대를 받았으며 삼모작 농사하는 것을 기이하게 봤다고 전한다. 어쩌면 그가 베트남에 간 최초의 한류스타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베트남은 근대로 넘어오면서 한자를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오랜 세월 한국과 일본처럼 한문을 계속 사용해 왔기에 그들은 지금까지도 스스로를 동남아 문화권이 아닌 동북아 문화권으로 여긴다. 베트남은 현재 알파벳 문자를 사용하고 있지만 말은 여전히 한자음을 유지하고 있어 과거부터 한국어와 발음이 유사한 단어들이 부지기수다. 하지만 이런 언어적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인 신랑과 베트남 신부간의 언어소통에는 여전히 넘기 힘든 장벽이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요즈음 한국으로 시집가는 신부들 못지않게 현지 이곳에서 한국 총각이 베트남 처녀를 만나서 이룬 가정이 갈수록 늘어간다. 특히 호치민 한국국제학교 내 한.베 가정 자녀수가 한 학급에 절반 가까이 차지할 정도로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필자 주위에도 한.베 부부들이 상당히 많은데 흥미로운 사실은 베트남에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음에도 부부간에 베트남어를 사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신부가 시내 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워 남편과 한국어로 간신히 대화하거나 신부가 고학력자인 경우는 아예 영어로 소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자녀들이 유아시절에는 엄마의 영향으로 베트남어를 주로 익히고 입학할 무렵 한국국제학교에 가서 한국어를 배우게 되어 어릴 적부터 2개 국어는 물론이고 영어까지 학습하여 미래에 상당한 경쟁력 있는 인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물론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부모들의 언어에서 상당한 혼란을 겪는 것은 사실이나 일정 시기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된다고 전한다. 하지만 정작 부부간에 원만한 대화가 어렵다면 관계가 지속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는 주위의 많은 한국교민들 중 베트남에서 10년을 넘게 살아도 왜 베트남 말이 유창하지 못한가라는 의문을 품어 왔다. 만일 한국남성이 미국땅에서 미국인 아내와 사는 경우 영어에 대한 기본기만 갖춰져 있다면 2~3년이면 웬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인들이 베트남어가 잘 안 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한국인들은 베트남인과 그들의 언어에 대해 경시하는 마음을 가지고 출발한다는 데 가장 큰 문제가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인들의 인종적, 문화적 우월성이 한 몫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서양언어처럼 배우고자 하는 의욕이 한참 떨어지는 것이다. 그 다음은 베트남어가 우리 한국어에는 존재하지 않는 성조가 무려 6가지나 있다는 사실에 지레 겁을 먹고 학습 초기에 대부분 포기한다는 데 있다.

역으로 베트남인들은 그 어렵고 정교한 한국어를 곧 잘하는 것을 보면 우리 한국인들은 아직 그들 만큼의 절실함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베트남은 동남아 지역에서 한류문화 형성이 일찍 시작되었고 호치민과 하노이 소재 여러 대학교에서는 한국어 학과가 해마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400년 전 조선의 한 선비가 한시로 베트남에서 크게 환영 받았듯이, 지금도 그들은 한국인을 늘 환대하고 한국상품을 선호하며 한국이란 나라를 선망하며 살아 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다음 호에서는 대구경북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에 대해 살펴 볼 예정이다.

박동중 베트남교민잡지칼럼니스트/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