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교통사고로 뇌병변장애가 생긴 김모(51'대구 북구) 씨는 팔다리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해 일자리를 구하거나 바깥에 돌아다니기가 쉽지 않다. 함께 사는 80대 노모는 지난해부터 기력이 많이 떨어져 몸이 불편한 김 씨가 돌봐야 할 상황이다. 김 씨는 장애인의 생활을 도와주는 활동보조인에 대해 알아봤지만 장애 3등급이라 1, 2등급에만 적용되는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김 씨는 "어머니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경제적인 문제도 생겼지만 혼자서는 집 안 청소를 하거나 시장을 보는 것이 어려워 생활 자체가 엉망이 됐다"고 했다.
이처럼 장애인 복지 사각지대 주범으로 지적된 '장애등급제'가 2016년 폐지된다. 그러면 김 씨처럼 등급이 낮아 각종 혜택에서 소외된 장애인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등급제 폐지를 주장해왔던 장애인단체들은 "이는 정부가 예산계획조차 없이 또 다른 장애인 종합판정도구를 개발하겠다는 의미"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14차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를 열어 현행 장애등급제를 대체할 별도의 판정도구를 개발해 2016년에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장애등급제는 1988년 장애인 등록을 시작하면서 지체, 청각, 시각 등 장애를 유형별로 나누고, 다시 장애 정도에 따라 1~6등급으로 나누는 제도다. 등급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달라 필요한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들이 많았다.
이 때문에 장애인 단체들은 오래전부터 장애등급제 폐지를 주장했다. 장애인 복지 예산 확대와 함께 개인의 환경에 맞는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장애인을 의학적 기준에 따라 등급을 나누는 곳은 일본과 우리나라뿐이다. 영국이나 미국은 장애인을 전 국민의 20%로 추정하고, 장애인 개인 사정에 따라 필요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장애인단체들은 "등급제 폐지 자체는 반길 일이다. 하지만 정부가 판정도구를 바꾸겠다는 말 외에는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발표가 없고 이에 대한 예산계획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알맹이 없는 발표로 장애인들을 현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활동보조인 제도 확대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있다. 정부는 현재 2등급 이상이 받을 수 있는 장애활동보조 서비스를 조만간 확대해 1만5천 명(3급 1만 명, 4'5급 5천 명)이 추가로 수혜 자격을 가질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부양가족이 있으면 서비스를 받을 수 없는 등 까다로운 기준 때문에 혜택을 받는 장애인은 많지 않을 것이란 게 장애인단체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활동보조 혜택을 받은 장애인은 5만8천 명. 2010년 복지부 조사결과, 활동보조인을 필요로 한 장애인이 35만 명으로 조사된 것에 비하면 이용률이 매우 낮다. 장애인단체들은 개인에 대한 조사 없이 혜택 등급만 늘린다는 정부발표는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012년 8월부터 서울 광화문에서 장애등급제 폐지 등을 요구하는 농성을 하고 있다.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관계자는 "정부의 장애인정책 추진계획은 현실성 있는 대책이 아닌 정치적 홍보에 그치고 있다"며 "정부는 예산계획과 개인별 지원체계 없이 장애등급제 폐지만 내세울 게 아니라 실효성 있는 장애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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