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해의 窓] 봄이 오지 않은 경주 정가

전국이 봄꽃으로 화사하다. 봄꽃 하면 경주도 빠질 수가 없다. 천년고도와 여러 봄꽃이 어울리니 훨씬 멋지다. 온통 꽃 소식으로 화사한 이때,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둔 경주 정가는 진흙탕 싸움으로 얼룩져 지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지난주부터 경주 정가는 온통 마우나리조트 사고 당시로 시계가 맞춰져 있다. 한겨울의 살벌한 풍경이다. 경주시장 출마를 선언한 최양식 경주시장과 박병훈 경북도의원이 사고 당시 벌어진 일을 두고 날 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먼저 문제를 제기한 것은 박병훈 도의원이다. 최 시장이 사고 현장에서 여학생 1명을 구했다는 뉴스가 일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는데, 이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맞지 않은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학생을 구하지 않은 채 구했다며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최 시장이 박 의원을 겨냥해 "구조현장에서 잠이나 자던 사람이…"라며 공격성 반격을 했다. 결국 박 의원이 진실을 밝히라며 경주역에서 사흘 동안 단식농성을 벌이는 '강수'까지 뒀다.

이런 진흙탕 싸움에 휘말리긴 싫지만, 현장을 취재했던 필자는 그날 두 사람의 모습을 모두 보았다. 마침 현장과 가까운 불국사에서 사고 소식을 접하고는 오후 10시가 조금 못 돼 도착했다. 현장은 처참했다.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패널에 깔린 학생들을 보고 발을 동동 굴렀다.

사고 현장에서 만난 최 시장과 박 의원도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최 시장은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구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이어 도착한 박 의원도 엄청난 사고에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이것이 필자가 본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뿐 아니라 그날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마음이었다. 사람을 구했다, 구하지 않았다가 아니라, 사고를 안타까워하는 그런 마음이면 충분한 일이다. 그런데 고인들이나 유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만한, 언급해서는 안 될 막말을 경주의 지도층이라는 두 사람이 하고 있는 것이다.

사고 발생 50여 일이 지나 사고 원인이 밝혀졌고, 관련자들은 처벌됐다. 다시 이 같은 사고가 반복되어서는 안 되지만, 그냥 가슴에 묻어두는 게 맞다. 이를 두고 '내가 옳다' '네가 그르다'며 시장 선거에 활용하는 듯한 모습은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일이다.

경주 현안은 산더미다. 신라왕경 복원을 위한 8개 사업 특별법 제정, 세계물포럼 행사 성공적 개최, 한수원 이전 등…. 이제 상대를 향한 날 선 공방보다는 정책으로 승부할 때다. 경주 정가에 봄꽃이 활짝 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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