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네 맘대로

구미에서 다문화 가정 한국어 수업이 있는 날이다. 모처럼 남동생과 점심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날이기도 하다. 늦지 않기 위해 수업일지도 미리 써 두었고, 11시 정각에 수업도 마쳤다.

교실을 나서는데 초급반의 김 선생이 나타났다. 구미가 고향이기도 하거니와 친화력이 좋아 강사들 간에도 인기가 있다. 여성으로는 드물게 시민경찰이라고 한다. 성격이 활달하며 거침이 없다.

"제 차로 모실게요. 타세요."

"금오공대 가야 하는데요. 12시 점심 약속이에요."

"O.K. 날씨 참 좋죠?"

경상도 말로 날씨 참 '째지게' 좋다.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유유히 떠다니고, 강물은 조곤조곤 순하게 흐른다. 거리에는 봄꽃들이 다투어 얼굴을 내밀고 있다. 밤 벚꽃놀이를 화제 삼아 신나게 달리는데, 동생한테서 전화가 온다.

"어디냐는 데요?"

"금오산 잠깐 들른다고 하세요. 10분만 늦는다고요."

"금오산은 왜요?"

"복사꽃 구경시켜 드릴려고요. 오늘 아침 일부러 들러서 왔는데 지금이 한창이더라고요."

복사꽃을 끼고 기분 좋게 달리노라니 동생한테서 다시 전화가 온다.

"얼마나 걸리겠느냐는 데요?"

"곧 도착한다고 하세요. 5분만 더 기다리라고 하세요."

"정확히 어디냐는 데요?"

"다 왔다니까요. 다 왔다고 하세요."

그러나 김 선생은 신호등 앞에서 차 문을 열더니 택시 기사에게 큰 소리로 묻는다.

"아저씨. 저기 저 건물이 금오공대 맞죠?"

"옛날 거 말인가요? 요즘 거 말인가요?"

나는 경악하여, "헉! 금오공대가 두 개예요?"

"네. 저게 옛날 건가~? 요즘 건가~?"

12시 50분. 머리끝까지 화가 난 동생 앞에서 죄인이 되어, "야, 야. 그만 해라. 이게 다 오지랖 넓은 구미사람 덕분이다."

동생이 핸들을 거칠게 꺾으며 대꾸한다.

"바쁘단 말이야. 누나 마음대로 시간 죽이면 어떻게 해!"

나도 소리를 버럭 지른다.

"글쎄, 복사꽃이 한창이잖냐, 금오산에."

꽃이 제 마음대로 피듯이 나도 내 마음대로.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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