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탈출하라' 한마디만 했었더라면…

비극의 여객선 세월호가 송두리째 기울며 침몰할 당시 몇몇 승객은 '탈출하자'는 한마디 외침으로 70여 명의 목숨을 구했다. 반면 선장과 선원들은 바로 아래층에 있던 80여 명의 학생에게 말 한마디 없이 자신들끼리만 도망쳐버렸다. 사고 당일 오전 세월호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 바닥과 천장은 물론 좌우가 뒤바뀌며 승객들은 방향 감각을 잃은 채 혼란스럽기 그지없던 상황이었다.

그때 뒤집힌 3층 선체에 바닷물이 순식간에 밀려들자 안내 데스크에 있던 한 승객이 큰 소리로 외쳤다. '탈출하자!' 세월호에서 생존한 그 승객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물이 들어오는 순간 주변을 살펴보니 한쪽 출입문이 열려 있어 '탈출하자'고 급하게 외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상당수 승객은 하체가 물에 잠긴 상태에서 출입문을 벗어났다. 그런데 바닷물이 급속히 유입되면서 출입문을 삼켜버리자, 또 한 승객은 '탈출'을 외치며 10여 명의 학생이 잠수해서 빠져나가도록 도와줬다. '탈출하자'는 급박한 외침은 4층에도 전달되어 승객 30여 명이 출입문 쪽으로 잠수해 탈출했다. 그는 남은 학생들마저 구조하지 못해 괴롭다고 했다.

3, 4층에서 물속을 헤엄쳐 선체를 벗어나던 학생과 승객들을 붙잡아 준 구원의 손길도 선원이 아닌 같은 승객의 손이었다. 그들은 40여 분 동안 난간에 머물며 마지막까지 탈출하는 단원고 학생들의 손을 이끌었다. 결국 한 승객이 먼저 외친 '탈출하자'는 한마디가 불과 3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승객 70여 명의 목숨을 건진 것이다. 이 중 단원고 학생은 50여 명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정작 승객들을 구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은 정반대였다. 고(故) 박수현 군이 오전 10시 11분에 촬영한 사진을 분석해보면, 당시 수현 군이 머무르던 4층 주변 객실에 80명이 넘는 학생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위쪽에 선장과 선원들이 탈출한 5층 조타실이 있었던 것이다.

이곳은 중앙 계단도 층간이 뚫려 있었다. 굳이 방송을 할 일도 없었다. 아래층을 향해 그저 대피하라고 외치기만 했어도, 그 생때같은 목숨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박 군이 사진을 찍기 약 25분 전, '대기하라'는 방송만 내보내던 선장과 선원들은 몰래 탈출해 해경의 구명보트에 올랐다. 해경 구조정은 나오지 않은 승객들을 기다리며 세월호 주변을 맴돌고 있었을 뿐이다. 역사와 과거에 가정은 없다지만, '탈출하라'는 한마디만 있었더라면…. 참으로 천추의 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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