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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읽어주는 남자] 게리 버튼 & 칙 코리아 -크리스털 사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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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음'(知音). '내 음악을 알아주는 벗'이라는 뜻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거문고 연주자 '백아'와 친구 '종자기'가 그런 사이였다.

백아는 길고 힘든 수련을 거쳐 거문고에 대자연을 담는 거장이 된다. 하지만 자기 음악을 제대로 알아주는 이가 없어 늘 고독했다.

어느 날 백아는 운명적으로 종자기를 만난다. 종자기는 음악을 읽는 데 천재적이었다. 백아가 '수선조'를 연주하자 종자기는 "도도한 파도가 바람에 휘말려 넘실거리며 흘러간다"고 답한다. 종자기가 곡의 심상을 그대로 읽어내자 놀란 백아는 '천풍조'를 들려준다.

종자기는 "가슴속에 해와 달을 거둬들이고, 발아래 무수한 별 무리를 밟고 서 있다. 참 높고 높은 봉우리다"라고 답한다. 이후 둘은 진정으로 교감하는 친구, 지음이 된다.

세계 재즈계에도 오래된 지음이 있다. 건반 타악기인 비브라폰 연주자 게리 버튼(Gary Burton)과 피아니스트 칙 코리아(Chick Corea)다. 서로가 백아이자 종자기다.

둘은 1973년 첫 듀엣 앨범 크리스털 사일런스(Crystal Silence)를 발표한다. 비브라폰과 피아노를 중심에 두는 독특한 구성의 재즈 앨범이다. 이후 듀엣(Duet'1979), 리릭 슈트 포 섹스텟(Lyric Suite For Sextet'1982), 네이티브 센스: 더 뉴 듀엣츠(Native Sense: The New Duets'1997), 더 뉴 크리스털 사일런스(The New Crystal Silence'2008), 핫 하우스(Hot House'2012) 등 합작품을 내놓는다. 이 중 '듀엣' '네이티브 센스: 더 뉴 듀엣츠' '핫 하우스' 앨범과 1980년에 발표한 스위스 취리히 콘서트 앨범으로 그래미상도 함께 거머쥔다.

백아와 만난 지 1년 만에 종자기는 죽는다. 지음을 잃은 절망감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연주하지 않았다. 유명한 '백아절현'이다.

하지만 게리 버튼과 칙 코리아는 40년 넘게 호흡을 맞추고 있다. 게리 버튼이 올해 만 71세, 칙 코리아가 만 72세다.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함께했다. 지음의 호흡은 올해 특별히 대구에서도 이어진다.

6월 13일 오후 7시 30분 수성아트피아에서 콤비의 대구 최초 공연이 열린다.

크리스털 사일런스 앨범에 대한 해설은 아름다운 앨범 커버로 유명한 독일 ECM레코드에서 만든 앨범답게 커버에 잘 녹아 있다. 질 무렵인지 갓 뜬 무렵인지 알 수 없으나 붉은 해가 떠 있다.(사진) 이즈음은 둘 다 낮과 밤이 섞이고 스미는 시간이다.

비브라폰과 피아노는 서로 낮과 밤이 돼 소리의 풍경을 배합한다. 동틀 녘 샛별 한 점을 영롱하게 새기고, 해 질 녘 붉은 석양을 은은하게 풀어낸다. 백아가 대자연을 담아냈던 수선조와 천풍조의 재즈 버전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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