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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읽어주는 남자] 브라운아이드걸스 - 3집 '사운드 지'

춘향이 이야기는 따분하다. 춘향이가 주인공이라면 이야기의 재미는 한 수 접고 들어간다. 춘향이를 어떻게 표현하든 '정절'은 춘향이의 족쇄이기 때문이다. 영화, 드라마, 소설을 거치며 춘향이는 고리타분한 정절의 아이콘이 됐다.

이야기의 중심에 향단이가 서면 어떨까. 별 특징 없는 조연이지만 그만큼 꾸밀 부분이 많다. 향단이의 순정이 이몽룡이나 변사또에게 향한다면 우리는 말도 안되는 사랑을 쟁취하려는 용기에 감탄할 것이다. 방자와의 로맨스도 원래 춘향전에서는 크게 다루지 않았기에 매력적이다. 또 몸종 신분의 설움을 풀고, 변사또의 폭정을 제압하며, 실은 약골남인 이몽룡 대신 남원 고을을 구하는 잔 다르크가 된다면! 향단이는 따분한 춘향이를 제치고 사람들의 관심을 독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제아, 나르샤, 미료, 가인으로 구성된 4인조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이하 브아걸)는 2006년 영락없는 '못난 향단이'로 데뷔했다. 예쁜 외모에 화려한 춤과 노래를 펼치는 가요계 수많은 춘향이(다른 걸그룹)들 사이에서 브아걸은 예쁘지도 않고 춤과 노래도 평범한 향단이였다.

그러다 2009년 3집 사운드 지(Sound G) 앨범을 내놓으며 브아걸은 '매력적인 향단이'로 등극한다. 이들은 음악 그 자체를 내세웠다. 앨범 수록곡 전부에 심혈을 쏟았고, 일렉트로니카(전자음악)를 콘셉트로 잡은 것이다.

당시 아이돌 가수 대부분은 타이틀곡에만 신경 쓰고, 앨범의 나머지 곡들은 일명 '끼워 넣기'로 구성했다. 지금이야 타이틀곡 하나만 달랑 발표해도 되는 '디지털 싱글'이 보편화 돼 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대부분 앨범 단위로 곡을 발표했고, 타이틀곡 한 곡을 밀기 위해 앨범에 다른 몇 곡을 끼워 넣는 풍조가 만연했다. 끼워 넣은 곡들은 타이틀곡보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브아걸의 3집은 달랐다.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시건방춤'으로 그해 여름을 후끈 달군 '아브라카다브라'를 비롯해 완성도 높은 일렉트로니카 스타일의 곡들로 앨범을 채웠다. 지누, 세인트바이너리, 하임, 프랙탈 등 당시 국내 유명 일렉트로니카 프로듀서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 앨범은 CD 2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두 번째 CD에는 이전 앨범 주요 수록곡들의 리믹스 버전이 실려 있다. 모두 첫 번째 CD에서 일관성 있는 수준으로 이어진다. 앨범에 참여한 프로듀서들이 그저 개별적으로 곡을 납품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함께 조율'구성한 정성이 물씬 묻어난다.

브아걸은 향단이다. 흔한 춘향이들 사이에서 돋보인다. 요즘 걸그룹들을 보면 예쁜 외모와 여성스러운 분위기만 만연하던 예전과 달리 개성 넘치는 끼와 특색 있는 콘셉트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씨스타, 투애니원(2NE1), 크레용팝이 대표적이다. 향단이의 전성시대다. 그런 변화를 만든 한국 대중가요사의 계기 중 브아걸의 3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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