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낙동칼럼] 권영진, 무소의 뿔처럼 가라

권영진 대구시장 당선인은 "대구 혁신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고 했다. 한두 번이 아니다. "목숨을 건다"는 말은 아무 때나 누구나 쉽게 내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목숨까지 들먹일 정도면 끝장을 보겠다는 말이다. 앞으로 4년 권영진의 대구시정에 바람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혁신은 권 당선인의 선거운동 전체를 관통한 대표 슬로건이다. 새누리당 경선에서 당원들의 동의와 지지를 받았고, 본선을 통해서 대구시민들로부터 검증을 받았으니 동력은 충분하다. 그들이 느끼기에 뭔가 아쉽고 답답한 대목, 뻥 뚫었으면 하는 곳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또 선거운동 초반 권 당선인의 선거사무실 외벽에 내걸린 현수막에는 목숨을 걸겠다는 구호와 함께 상복 같은 흰 한복을 입은 권 당선인의 사진이 실렸다. 이런 게 '보수'의 도시 대구에서 끝내 통할 수 있었던 데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시민들의 절박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달랑 고등학교 3년만 대구와 연고를 맺은 인물을 집권 여당 새누리당의 대구시장 후보로, 260만 대구를 대표할 대구시장으로 뽑았을 리 없다. 대구가 어떤 곳인가? 뿌리에 뿌리를 캐서라도 줄이나 '빽'을 찾고, 연고를 따지고, 끼리끼리 문화에 젖어 있고, 변화를 두려워하거나 거부하고,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둔감하다는 지적을 받는 도시가 아닌가. 그런데 경북고를 나오지도, 서울대를 나오지도, 고시를 패스하지도, 대구에서는 국회의원은 물론 구청장도 해 본 적 없는 '생소한' 인물을 덜컥 시장으로 뽑아 놓았다.

또 연공서열을 어느 곳보다 중시하는 곳에서 1995년 민선 단체장 선출 이래 가장 젊은 후보를 시장 자리에 앉혀 놓았다. 권 당선인은 6월 현재 51세에 불과하다. 예전 같으면 어른들 사이에서 "아직 아 아이가. 아가 무슨…"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법한 나이다. 그런데 연륜은 물론 학력이나 경력에서도 월등한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모두 제쳤다. 변화와 혁신을 바라는 당원들과 시민들의 염원이 힘이 됐다.

권영진은 '낙하산 전문' 정당인 새누리당의 낙점도 받지 못했다. 치열한 경쟁을 자력으로 통과했다. 덕 본 게 없으니 서울에다 큰소리칠 수 있다. 또 국회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치열했던 당내 경선의 후유증이 없지 않았다. 전임 시장 아래서 후계자 수업을 받지도 않았다. 상왕 정치 우려도 없다. 이처럼 권영진 당선인은 역대 여당 시장 후보들처럼 기득권층의 지지와 지원을 받지 못했다.

선거를 통과한 지금 그게 역으로 권영진의 힘이 되고 있다. 그는 기득권으로부터 자유롭다. 정치적 채무도 없다. 물리적 빚도 없다. 속된 말로 권영진은 어디에도 누구한테도 '코 꿰인 데가 없다'. 발걸음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 오직 표를 준 시민들에게만 부채가 있을 뿐이다.

물론 권 당선인 앞에 탄탄대로와 장밋빛 청사진만 펼쳐진 건 아니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기존 질서에 안주하면서 떵떵거리고 잘 살았던 사람들,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이 대열에 가담할 것이다. 그들이 '권영진 표 혁신'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주저앉거나 그만둘 권영진이 아니라는 점은 위안이다. 권영진의 꿈은 대구시장이 아니라고 알려져 있다. 역대 대구시장 대부분이 시장 자리를 공직 생활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반면 권 당선인은 다르다. 대구시장이 새로운 출발이다. 평생을 관료로 지내다 고향에서 공직생활을 아름답고 화려하게 마감하려는 고령의 시장과는 다르다. 대구시장의 경험과 관록을 바탕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겠다는 젊은 시장이다. 어느 쪽이 시정을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펼칠 것인지는 분명하다. 답답하기만 한 시민들이 권 당선인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기 내내 쉬지 않고 달리겠다고 한 만큼 권 당선인은 적당하게 기득권과 타협하지 않고, 거래도 하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속도조절이나 연착륙 운운하며 변화와 혁신의 고삐를 늦춰서도 안 된다. 앞으로 1년 안에 판가름이 날 것이다. 목숨을 건다고 했는데 흔들릴 것도 없고 주저할 것도 없다.

기득권과 반동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어떤 장애물도 뚫고 나갈 무소의 뿔처럼 꿋꿋하게 앞으로 나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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