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 칼럼] 사퇴는 국민의 뜻

부끄럽고 참담하다.

헌정사상 최초의 기자 출신 국무총리 후보자가 탄생했지만, 언론계는 물론이고 온 국민이 문창극 후보자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중앙일보에 입사, 정치부 기자와 정치부 차장, 정치부장, 워싱턴 특파원, 논설실장, 논설주간, 주필, 대기자를 역임했고 한국언론대상도 받았다. 그가 쓴 칼럼의 논조나 성향을 따지지 않는다면 가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자로 살아왔다고 할만한 이력이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총리 후보자로 내정된 문 후보자에 대해 야당에서는 그동안 쓴 칼럼을 끄집어내 '극우 보수성향'이라며 총리 자격이 없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직전, 그의 비자금 문제를 지적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한 칼럼을 문제 삼았다. 금기시되던 것을 지적한 용기있는 글이었다는 평가도 있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 일본으로부터 사과받을 필요가 없다는 글도 논란거리로 등장했다.

이윽고 문제의 동영상이 터졌다. 서울의 한 대형교회 장로인 그가 1시간여짜리 강연 동영상에서는 '우리나라 국민이 더럽고 게으른 DNA를 가진 것 같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남북분단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도 미국을 되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라는 해괴한 논리도 펼쳤다. 충격적이었다.

난리가 났다. 그러면 곧바로 사과와 해명에 나서야 했지만, 그의 태도는 정말이지 적반하장이었다. "사과는 무슨…."이라며 사과를 거부했고 '악마적 편집'이라며 동영상을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그러다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그를 지지하겠다는 뜻을 밝히자 뒤늦게 카메라 앞에 나서 자신의 발언과 칼럼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하는 자세로 급변했다.

동영상에서 드러낸 '식민사관'에 대해 교회라는 공간에서 한 종교적 역사인식일 뿐이라며 문제 될 게 없다고 해명했다. 야당이 불쾌해한 칼럼에 대해서도 당시에는 언론인으로서 지적한 것이지만 앞으로 공인이 되면 몸가짐에 조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훈클럽 신영기금 이사장 시절, 신영기금이 결정하는 고려대학교 석좌교수 자리에 자신을 추천, 임용된 것과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초빙교수 월급을 서울대 동창회가 지급하도록 한 것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못했다. 법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총리 후보자라는 공인의 도덕성으로는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 사안이다.

언론인으로서 썼던 칼럼은 문 후보자 본인의 소신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 후보자는 야당이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당사자에게 상처를 줬지만,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며 당당하게 대응하는 것이 35년 언론인 외길을 달려온 외곬 인생의 자세였을 지도 모른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일본의 우익세력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다 일본이 이웃에 있어 행복하다는 '친일'DNA가 뼛속까지 스며들어 있는 그런 분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되자 일본이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등 비아냥대고 있다. 우리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가까워진 중국을 '기독교화해야 한다'는 말을 통해 중국을 비하하고 왜곡한 분이 총리가 된다면, 한'중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할 수밖에 없다. 사과한다고 이해할 문제는 아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백지화시킨 '남부권 신공항'도 지역 이기주의라고 매도한 바 있다.

청와대가 소개한 '소신과 자기주장이 강한 천생 기자 스타일'이라는 문 후보자 프로필은 '식민사관에 젖은 권력지향형 해바라기'라고 고쳐야 한다. 나도 평생을 기자로 살아왔다. 내가 쓴 글과 칼럼은 기자를 그만둔 후에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그를 비토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그가 자주 쓰는 '하나님의 뜻'이 등장하고 있다.

그가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이력과 껍데기만 보고 잘못 천거한 김기춘 비서실장 등 인사담당자들의 판단 잘못에 의한 것이었다.

자신의 허물을 감추고 총리 제의를 덥석 받아들였다가 낙마 지경에 이른 과정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더는 하나님의 뜻 운운하지 말고 준엄한 국민의 뜻을 받아들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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