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통일신라 새 수도 '달구벌' 이면엔…

달구벌 옛 의미 '닭의 벌판' 김씨 시조 알지와 인연 각별…왕권 강화의 터전 기대한

경북대 사학과 주보돈 교수
경북대 사학과 주보돈 교수

신라는 오늘날의 경주에 뿌리를 둔 초기국가 사로국에서 출발, 마침내 왕조 국가로 발전하여 천 년을 유지하였다. 세계사적으로 볼 때 그처럼 오래 지속된 국가 가운데 왕도를 한 번도 옮긴 경험이 없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신라이다. 이는 곧 바깥으로부터 가해진 위협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만, 정치적 중심지가 한 곳에만 있게 됨으로써 부정적 요소도 저절로 배태되기 마련이었다. 그것은 골품제와 같은 고대적 신분제가 강고하게 유지된 데서 뚜렷이 확인되는 사실이다.

삼국을 통합한 뒤 새로이 늘어난 영토와 인구를 한반도 동남쪽에 치우친 경주만으로는 안정적으로 감당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신문왕은 체제 정비를 위한 최종 작업으로 689년에 달구벌로의 천도를 시도하였다. 기록상으로는 '왕이 천도하려고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未果)'고만 되어 있는데 이를 흔히 도상의 계획에 그친 것이라 풀이하여 왔다. 그렇지만 단순히 계획으로 끝났다면 그처럼 특별하게 기록으로 남기지는 않았을 터이므로 어떤 실제적인 추진 작업이 상당한 수준으로까지 진행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 마무리 과정에서 귀족들의 강력한 반발을 받아 실패하였기에 기록으로 남게 되었을 터이다.

신문왕이 하필 달구벌을 천도의 대상지로 선정한 것은 영남권의 한가운데로서 경주보다 한층 넓은 분지이고 또 육로 및 수로 교통상의 요충지이기도 한 데에 있으려니와, 다른 한편 이 지역이 경주 김씨 세력과 각별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씨 시조인 알지의 탄생지가 흰 닭의 울음소리와 관련된다고 하여 계림(鷄林)이라 이름 붙인 데서 드러나듯 김 씨는 원래 닭을 조상신으로 여겨 숭배한 부족으로서 계림을 국명으로 사용하기까지 하였다. 대구의 옛 이름 달구벌은 '닭의 벌판'이라는 의미로서 김씨 족단과의 각별한 친연성을 가진 지역으로 보인다. 그 점은 신라인들이 대구의 진산(鎭山)인 팔공산을 원래 '공식적인 산'(公山) 혹은 '아버지산'(父岳)이라고 부른 사실에서도 어렴풋하게나마 유추된다. 천도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팔공산을 중악(中岳)이라고 불러 오악 신앙의 중심으로서 삼았던 점도 그런 사정의 일단을 반영해 준다.

달구벌로의 천도를 위한 기초 작업이 상당히 진척되었을 터이나 그를 입증할 만한 고고학적인 물증은 아직 찾은 적이 없다. 어쩌면 천도의 실패로 정치적 중심지를 가창 방면으로 옮기게 되면서 의도적으로 파괴된 탓인지, 아니면 이후 주민이 계속 살면서 자연적으로 파괴된 때문인지 잘 알 수가 없다. 발굴을 통하여 장차 그런 흔적이 드러나기를 기대해 본다.

경북대 사학과 주보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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