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머리에 기름을 잘도 바른 남성이 반듯한 양복을 입고 나의 상담실을 방문했다. 그의 양복은 자기는 반듯한 사람이다, 자기를 그저 평범한 회사원으로만 보지 말라고 말했다. 무기력하고 술에 찌든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괴로웠던 것이다. 그것이 상담실을 오도록 만든 이유다. 이 남성은 회사 상사를 비난하며 지적하고 싶어 죽을 것 같지만 그리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 매우 화가 나 있었다. 착하고 전통적인 이 남성은 그 분노를 순전히 자기 자신에게 돌리며 참고 참았던 것이 역력해 보였다.
상담 50분 내내 이 남성은 숨도 쉬지 않고 이야기를 퍼부었고 상당히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전문용어를 사용했지만 결국 그는 "너희들은 아무리 해도 나를 따라올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 남성은 회사에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 소외될 것이 분명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퍼부어대는 사람은 사실 인기도 없고 본전도 못 찾는다는 것을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입 대신 손과 눈이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그 남성은 50분 동안 화내고 욕하고 억울해했지만 마치 아닌 듯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서 상당한 에너지를 쓰고 말았다. 그 시간 동안 남성은 자신이 해 온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을 받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듯 보였다. 그 보상이란 단지 진심으로 들어주는 마주앉은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에 불과하다. 사회적 평가와 잣대 없이 들어주는 상담사의 귀는 그가 살아온 인생을 그대로 보상받는 순간의 주인공이다. 그렇게 그 남성은 50분이 지나 칸트처럼 정확히도 의자에서 일어난다. "선생님, 제가 얼마나 정확하고 얼마나 예의 바른 사람인지 선생님은 잘 아실 거라 믿습니다"라며 그의 눈은 순수한 받아들여짐을 간곡히 애원한다. 이렇게 열심히 전투하는 이 남성을 대신해 잣대를 들이대는 이들과 내가 대신 싸워주고 싶을 정도다.
상담시간에 터져 나오는 분노는 오히려 이 남성의 정신적 건강에 도움이 되는 듯 보였다. 그래서 나는 당분간 상담실에서 격분하는 이 남성을 충분히 인정시키고 격려했다. 그동안 참았던 분노가 자기 자신을 향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 남성은 충분히 인정받고 칭찬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이 남성은 현실적 현실, 이상적 현실, 심리적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릴 적 그의 아버지는 술 한잔 걸치면 과자를 건네주셨고 이 세상의 빛이 되라는 작사'작곡 미상의 노래를 그에게 들려 주셨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연민은 상사에게 지적받을 때마다 부정하고 싶은 나약함에 대한 분노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상담시간 50분이 지나자 정확히 일어난 이 남성은 람보르기니 배기통 소리를 내는 자동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 저 멀리 보이는 자동차는 언뜻 람보르기니가 아닌 듯하다. 그러나 이 남성의 자동차는 이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람보르기니다. 강력한 힘을 가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심리적 현실과 람보르기니의 액티브한 이상적 동경은 오늘도 이 남성을 존재하게 한다. 남자들의 반란을 사랑한다.
연세심리상담클리닉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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