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덕(52) 포항시장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운도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던가. 경찰대를 1기로 졸업한 후 경찰관으로서 승승장구했다. 40대 젊은 나이에 부산청장, 경기청장, 서울청장, 해양경찰청장 등 요직을 역임했다.
민선 포항시장직을 놓고 새누리당 경선 과정에서는 여성우선공천이라는 암초에 부딪혔으나 여론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포항시민의 선택을 받는 데 성공했다. 첫 정치적 도전에서 승리라는 달콤한 열매를 맛본 것이다.
이강덕 시장의 속칭 '운빨'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 해답은 의외로 쉬웠다. 그가 정신적 멘토라고 입버릇처럼 되뇌는 그의 은사 류정순(62) 선생님을 만나면서 풀렸다. 이 시장이 포항 장기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3학년 4반 담임이었다.
브라질 월드컵 16강 진출의 운명이 걸린 대한민국과 알제리의 경기가 열렸던 6월 23일 이 시장과 류 선생님을 송도해수욕장 앞 한 카페에서 만났다. 대한민국이 알제리에 패해 아쉬움이 컸지만 인터뷰를 위해 서울에서 포항까지 내려온 류 선생님을 만나면서 위안이 됐다.
블루 재킷에 베이지색 바지를 받쳐 입은 모습은 60대라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미가 넘쳤다.
소년 이강덕이 20대의 청순한 여교사에게 마음을 빼앗기기에 충분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께서 발령받고 처음으로 우리 반 담임을 맡으셨는데 깔끔하고 단아한 모습이 첫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당시 시골학교에 서울에서 대학(수도여자사범대학)을 나온 선생님이 드물었는데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이 시장은 류 선생님에 대한 첫인상이 아주 좋았다며 웃음을 베어 물었다.
"선생님은 공부에 대한 목적과 인생의 교훈에 대한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그때까지 맹목적으로 공부를 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듣고부터 목표의식이 뚜렷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어요. 선생님이 제 인생의 멘토로 다가오신 것이죠."
이 시장은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절 방황하지 않고 인생의 목표를 세우고 담금질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류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급훈을 '스스로 참여하고 노력하자'로 정했습니다. 학생들이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해 능동적으로 움직이도록 유도했죠. 또 교사로서의 의무가 아닌 애정을 갖고 학생들을 대하는 진정성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현재의 1분 1초가 인생에서 중요한 시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셨는데 정말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지난 시절을 떠올리는 이 시장의 얼굴이 약간 상기됐다. 마치 류 선생님 앞에서 중학생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모습이었다. 이 시장은 류 선생님을 곁에 두고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이 실감 나지 않는다는 듯 흥분을 감추지 못했지만 계속 말을 이었다.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인생이 달라질 수 있으며 항상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라는 말씀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더 큰 세상이 기다리고 있으며, 할 수 있다는 신념이 가장 중요하다고 늘 말씀하셨죠. 그 당시 선생님의 가르침이 저뿐만 아니라 우리반 60여 명 아이들 모두에게 자극이 됐습니다. 그래서인지 시골 중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지금 사회에서 훌륭한 몫을 하는 인재로 성장했습니다. 지금도 자주 만나 선생님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실제로 이날 장기중 3학년 4반 졸업생들 중 포항에 살고 있는 10여 명이 류 선생님의 포항 방문에 맞춰 점심식사 자리를 만들었다. 매일신문 인터뷰가 선생님과 제자들과의 만남 시간으로 연결된 것이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 있을 무렵 시골의 어려운 형편에 변변한 참고서나 문제집을 구하기 힘들었는데 선생님께서 선뜻 문제집을 한가득 가져다주셨습니다. 그 책으로 열심히 공부해 대구로 진학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친구들을 향한 선생님의 따듯한 눈빛과 격려는 언제나 우리들에게 큰 힘이 됐습니다."
존경이 담긴 이 시장의 말이 이어지자 류 선생님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이제 그만 비행기에서 내려놓으라고 하신다. 스승과 제자가 아닌 누나와 동생 같은 느낌이 들었다.
류 선생님은 담임을 맡은 이듬해 포스코맨을 만나 결혼하면서 교직을 떠났다. 지금은 서울 잠실에서 살고 있다. 혹시 마냥 온화한 선생님이 화를 내는 등의 에피소드가 없었느냐고 물었다.
"한번은 친구들과 함께 여학생 가방에서 쑥떡을 훔쳐 먹은 사건이 있었어요. 범인(?)이 나오지 않자 학생들 모두 책상 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게 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선생님이 화내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또 경주로 소풍을 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선생님에게 노래를 신청했는데 '울산 큰애기'라는 노래를 들려 주셨어요.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청아한 목소리에 반 아이들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류 선생님이 얘기했다.
"강덕이가 포항시장직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충분히 해낼 것으로 믿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시민들에게 낮은 자세로 다가가고 아픔을 어루만지며 비전을 제시하는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를 늘 기도하겠습니다."
이 시장은 7월 1일 열린 취임식에 류 선생님을 초대해 가장 앞자리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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