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화(67) 씨. 그는 달성 서씨 양반집 딸이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옷매무새에 어떤 순간에도 절제된 카리스마를 가졌다. 그러나 그는 주위 사람들이 인정하는 '봉사왕'이다. 그는 나눔과 돌봄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여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봉사는 즐거워
서 씨의 손길은 상황과 장소에 따라 다르다. 때로는 다정한 '주부'의 손길로, 때로는 따뜻함을 담은 '딸'의 손길이 된다. 봉사하러 갈 때면 서 씨는 전날 밤부터 설렌다고 했다. "만날 사람에 대한 설렘도 있고 전에 만난 어르신이 건강한지 궁금도 하고, 그리고 준비도 해야 하고…." 그리고 그는 "하는 시늉만 할 바엔 안 하는 게 낫다"고 했다. 그만큼 서 씨는 철두철미하다.
서 씨는 한 달에 한 번 대창양로원(고령군 쌍림면)에 미용봉사를 간다. "사랑하는 자식을 사할린에 놔두고 홀로 그곳에 정착한 분들이잖아요. 어르신을 뵈면 '뭐 더 해드릴 것이 없을까? 하는 생각부터 들어요."
미용기구를 손질하고 과자도 챙기고, 무엇보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로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줄까 고민한다. 그래서 서 씨는 요즘 유행하거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메모해 둔다. 한 달 동안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예쁘게 손질해주면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무엇보다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머리카락을 손질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어르신들은 별 재미없는 얘기도 다 들어줘요." 마음을 나누다 보니 할머니들이 친정엄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더 정이 가고 더 잘 해드려야 겠다고 결심도 하게 된다고 했다. 어떤 어르신은 다음에 올 때 속치마를 사 달라는 이도 있고 먹고 싶은 것을 사 달라는 이도 있다. "한 번은 허리춤에서 비닐봉지를 꺼내더니 그 안에서 꼬깃꼬깃 접힌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저의 손에 쥐여주며 속치마를 사달라고 했어요. 다음 달 치마를 사서 다시 갔더니 돌아가셨더라고요. 얼마나 안됐던지 한참 울었어요."
서 씨는 안심복지관에도 급식봉사를 간다. 서 씨는 밥을 풀 때 고봉으로 밥을 담는다고 했다. "하루 한 끼밖에 안 드시는 어르신이었어요. 그래서 되도록이면 많이 담습니다." 그리고 밥을 조금 질게 하고, 국이나 반찬을 조금 짭짤하게 만든다고 했다. 어르신들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다. "어르신들은 고슬고슬한 밥을 안 좋아하세요. 그리고 반찬이 싱거워도 잘 안 드세요. 그래서 건강에 좋지는 않지만 맛있게 많이 드시게 하려고 간을 좀 더 합니다."
서 씨의 봉사는 항상 '스탠바이' 상태다. 시나 구청, 단체에서 요청해오면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돼 있다. 몇 달 전에는 세월호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을 위해 두류공원 내 올림픽기념유도관에서 봉사도 했다.
◆'봉사왕'에 뽑혀
서 씨는 40대 후반부터 봉사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곳은 교도소. 부모가 없는 재소자들을 위해 음식을 해다 날랐다. "주부이다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혼자 할 수 있었고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니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다 한문과 난 치는 것을 배우기 위해 동구여성문화회관에 나갔는데, 뜻밖에 봉사모임 회장에 추대됐다. 같이 봉사활동을 하는 이유진 씨는 "서 회장은 자신을 돌보지 않아요. 순발력도 있고 지혜도 있어요. 무엇보다 리더로서 갖춰야 할 자격이 있어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제일 먼저 나와 준비를 하는 등 누구보다 앞장서서 일합니다."
서 씨는 친정아버지로부터 봉사를 배웠다고 했다. "아버지는 엄한 분이셨지만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을 주고 옷이 없는 사람에게는 옷을 벗어주고 오셨어요."
서 씨는 지난해 봉사회원들이 무기명으로 한 명을 뽑는 '봉사왕'에도 뽑혔다. "부끄럽기도 하지만 모든 회원들이 인정하는 것 같아 기분은 좋아요.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
◆어르신 모시고파
서 씨는 꿈이 있다.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크고 좋은 집을 사서 어르신을 모시고 싶어요. 수발도 들고 임종도 지켜 드리고 싶어요."
서 씨는 봉사가 천직인 것 같다고 했다. "일하고 돌아오면 힘이 듭니다. 몸이 아프다가도 자고 나면 신기하게 개운해집니다. 봉사는 중독이에요. 중독.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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