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다리가 얼른 나아야 해요. 돈 벌어서 딸을 미용학원에 보내주는 게 유일한 소원이에요."
현정미(49) 씨는 보통 사람들처럼 외출하는 일이 쉽지 않다.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을 때가 많아 벽을 잡고서야 간신히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리 상태가 평소보다 좋을 때도 3㎝가량 짧은 왼쪽 다리 탓에 절뚝이며 걷는다. 힘겹게 걸으며 바닥에 질질 끌린 신발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구멍이 나고 밑창이 떨어진다. 하지만 새 신발을 사는 일도 현 씨에게는 사치다.
"없는 살림에 한창 뛰고 돌아다니는 중학생 딸도 2년째 신발 하나로 버티는데 떨어질 때마다 새 신발을 살 수 있나요. 다리가 얼른 나아야지 돈 벌어서 우리 딸 신발도 사주고 학원도 보내줘야 하는데…."
◆평생 행복한 적 없어
현 씨는 자신의 인생이 항상 박복하다고 말했다. 시골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에 들어갈 때쯤 벌써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두 번의 결혼을 했지만 두 번 모두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두 아이를 홀로 키웠다. 교통사고로 장애까지 얻으면서 현 씨의 인생은 웃을 일이 많지 않았다. "돌아보면 행복하다고 느껴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힘든 일이 계속해서 반복됐으니까요."
첫 번째 결혼에서 현 씨는 큰아들을 얻었다. 남편은 현 씨와 아들을 두고 밖으로만 나돌았다. 아내를 두고 다른 여성을 계속해서 만났고 참다못한 현 씨는 아이를 데리고 남편을 떠났다. 두 번째 결혼에선 딸을 얻었다. 두 번째 남편은 돈을 벌어오지 않아 현 씨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두 번째인데다 두 아이에게 제대로 된 가정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현 씨는 일하지 않는 남편도 견뎌냈다. 남편이 심지어 절도까지 했지만 참았다. 하지만 자신의 자식이 아닌 큰아들을 학대하는 것에는 참을 수 없었다. 결국 현 씨는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자 살기로 결심했다.
"아이에게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먹으라고 하고, 한겨울에 맨발로 대문 밖에 세워두기도 했어요. 이런 아빠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낫겠다 싶어서 데리고 나왔어요."
◆교통사고로 얻은 다리 장애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 없이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식당일을 하게 된 현 씨는 식당 한쪽 방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살았다.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작은 방 한 칸을 구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식당일을 했다. 생활비를 쓰고 나면 얼마 남지 않는 적은 돈이었지만 현 씨는 자신도 언젠가는 아이들과 행복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열심히 모았다. 조금씩 모은 돈을 밑천으로 붕어빵 장사를 시작했다.
"포장마차도 하고 겨울에는 붕어빵 장사를 했죠. 아이들이 클 때까지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일을 했어요."
장사를 시작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현 씨에게는 또 한 번 큰 불행이 닥쳤다. 5일장이 열리는 곳을 찾아다니다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것. 졸음운전을 하던 차량이 현 씨가 탄 차를 박았다. 차 밖으로 튕겨 나온 현 씨는 뇌출혈과 갈비뼈, 어깨뼈, 다리뼈 등이 골절됐다. 병원에 있으면서 다른 상처는 치료됐지만 다리에 장애가 남았다.
"뇌출혈 신경을 쓰느라 다리 수술을 사고가 난 지 석 달 뒤에 했어요. 그래서인지 수술이 잘 됐다는데도 다리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고 상태는 점점 심해졌죠."
◆학원에 보내줄 수 없어 마음 아픈 엄마
사고 이후 현 씨는 아픈 다리 때문에 움직이거나 서 있기가 어려워 일을 할 수 없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한 달에 70만원가량을 받아 생활했지만 그조차도 큰아들이 성인이 되면서 30만원 수준으로 삭감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현 씨는 아들에게 생활비 한 번 받아보지 못했다.
"어린 시절 두 번째 남편에게 학대를 당해서인지 일찍부터 비뚤어지기 시작했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는 집에도 잘 들어오지 않아요. 생활비는 바라지도 않고 더 엇나가지 않기를 바라죠."
최근에는 다리가 점점 불편해지고 있다. 1, 2분 거리의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는 데 15분이 걸릴 정도로 걷는 일이 쉽지 않다. 불편한 다리보다 현 씨의 마음에 걸리는 건 미용기술을 배우고 싶어하는 딸이다. 반찬 사먹을 돈도 부족한 형편 때문에 그토록 가고 싶어하는 미용학원을 보내주지 못해 현 씨의 마음은 무너진다. 자동차 부품을 조립하는 부업을 하고 있지만, 다리가 당기고 아파도 현 씨는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한다.
"주말만 되면 미용학원 구경을 갈 정도로 학원에 가고 싶어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제 마음이 오죽하겠어요. 다리만 괜찮으면 일하고 싶은데 상태가 갈수록 나빠지기만 하니…."
댓글 많은 뉴스
대통령실, 추미애 '대법원장 사퇴 요구'에 "원칙적 공감"
지방 공항 사업 곳곳서 난관…다시 드리운 '탈원전' 그림자까지
李대통령 지지율 54.5%…'정치 혼란'에 1.5%p 하락
김진태 발언 통제한 李대통령…국힘 "내편 얘기만 듣는 오만·독선"
"차문 닫다 운전석 총기 격발 정황"... 해병대 사망 사고 원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