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를 사랑하는 한국인은 많다. 하지만 이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제각각이다. 테너 임산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직접 화법을 쓰지 않는다. 대신 일본인의 무분별한 남획으로 멸종된 '강치'라는 동물로 에둘러 독도 이야기를 풀어낸다. 2012년 싱글 앨범인 '보고 싶다 강치야'를 발매하면서 매년 독도에서 강치를 주제로 한 콘서트까지 열고 있다. 임산의 유별난 강치 사랑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내 최고 무대는 독도"
임산은 음악가다. 음악가는 무대에 설 때 가장 빛나는 사람이다. 광복절을 앞둔 지난달 13일 그가 섰던 무대는 독도 선착장이었다. 3회를 맞이한 '보고 싶다 강치야! 독도 콘서트'는 3년 만에 처음으로 독도에서 열렸고, 그곳에서 '독도 아리아'가 울려 퍼졌다. 그는 "예전에는 독도에 큰 어려움 없이 들어갔는데 이상하게도 강치 콘서트를 기획한 뒤로는 기상 상황 때문에 독도에 들어가는 것이 어려웠다"며 "강치의 한이 있는데 올해는 꼭 독도에 들어가서 콘서트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강치 콘서트를 처음 시작한 재작년에는 울릉도 등대 밑에서, 지난해에는 독도 동도 뒤쪽 배 위에서 음악회를 열었다.
바다사자의 일종인 '독도 강치'는 독도와 동해안 인근 바다에서 서식했으나 1900년대 초 일본인들의 남획으로 멸종됐다.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테너 임산은 왜 하필 독도와 강치에 초점을 맞췄을까. 기억은 약 15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임산이 세계에 독도를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001년 무렵이었다. "노래 '호텔 캘리포니아'는 미국 시골의 허름한 호텔을 유명한 관광지로 만들었고, 이탈리아 나폴리는 '오 솔레미오' 덕분에 세계 3대 미항이 됐어요. 저는 음악인이니까 전 세계에 노래를 통해 내 나라와 독도를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2009년 임산은 클래식 앨범인 '독도 아리아'를 발매했다. 3년간 19개 나라를 돌며 공연을 할 때마다 이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어느 날 힘이 빠졌다. 한국인에게 독도는 한반도의 역사가 걸린 문제였지만 외국인의 눈에는 한일 간 외교적 분쟁으로 비칠 뿐이었다. "한국에 독도라는 섬이 있고, 일본과 영토 분쟁을 하고 있다, 노래를 부른 뒤 이렇게 설명하면 외국인들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어요. 한국과 일본이 싸우는데 '한국 편들어주세요'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강치에 숨겨진 독도의 슬픈 역사
이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그의 독도 사랑을 눈여겨본 한 교수가 독도 강치에 대해 알려줬다. 강치에는 독도가 우리 땅임을 증명할 수 있는 강력한 스토리가 있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시작점이 강치예요. 1900년도에 강치 한 마리 가죽 값이 소 6~8마리를 합친 것과 비슷할 정도로 값이 많이 나갔는데 한 일본 수산회사에서 강치잡이를 독점하고 싶어했어요. 이 회사는 독도를 통째로 빌릴 수 있는 임대 청원서를 작성해 일본 정부에 요청했고, 결국 일본은 독도를 강제로 자국 영토에 편입했어요." 이후 그는 강치 전문가가 됐다. 지금껏 모은 강치 정보가 너무나 방대해 논문을 한 편 써도 될 정도다. 그는 "일본 어부들은 모성애가 강한 강치의 특성을 이용해 새끼 강치를 먼저 잡은 뒤 어미 강치가 새끼를 구하러 오면 망치로 머리를 내리쳐 죽이기도 했다"며 잔인했던 포획 방법에도 분노를 터뜨렸다.
2012년부터 임산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직접 화법을 쓰지 않았다. 대신 강치가 어떤 동물이고, 독도에서 왜 사라졌는지 음악으로 설명하는 데 초점을 뒀다. 강치를 앞에 내세우자 주변과 협업하는 것이 한결 수월해졌다. 그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내세우며 기업과 협력하려고 하면 반응이 썩 좋지 않았다. 심지어 연예인들도 행사에 동참하는 데 꺼렸다. 일본에 물건 안 파는 회사가 없으니 부담이 됐을 것"이라며 "하지만 강치를 주제로 환경보호, 자연보호로 초점을 맞추자 기업들도 부담이 덜 됐는지 좋은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3년째 이어온 '보고 싶다 강치야! 독도 콘서트'는 강치 사랑의 결과물이다. 이 콘서트는 각 분야의 예술인들과 협업으로 완성됐다. 화가 이희재 씨는 강치 그림을 그렸고, 이 그림으로 디자이너 한혜자 씨가 티셔츠를 디자인했다. 이 옷은 콘서트에 참가한 성악가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나눠 입었다. 그는 "각계각층 문화 인사와 함께 멋있게 독도 콘서트를 하고 싶었는데 그 소망을 이뤘다. 첫해에는 김영석 한복 디자이너가 만들어 주신 한복을 입고 공연했고, 지난해에는 경북도립교향악단이 오케스트라로 함께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그의 애정을 해양수산부도 알아봤고, 지난달 '독도 강치'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현재 해수부가 독도 강치를 복원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는 것도 고무적인 일이다.
◆"아저씨, 강치 닮았어요!"
임산은 세계에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는 2010년 무작정 경기도교육청을 찾아가 "음악회를 할 수 있도록 중고등학교를 섭외해달라"고 요청했다. 학생들에게 친숙한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며, 자연스레 강치와 독도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테너 임산과 함께하는 나라사랑 친구사랑 콘서트'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피아노 반주가 고작이었지만 지금은 '챔버 앙상블'을 꾸려 악기 8개로 풍성한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난해에는 그의 고향인 경북 김천의 중고등학교를 찾아갔다. 그는 "처음에는 무대 환경이 열악하니 재능 기부를 하는 선생님들(다른 음악가들)이 가기 싫어하셨지만 지금은 서로 가려고 해 경쟁률이 치열하다. 공연이 끝나면 수백 명의 학생들이 '사인해 달라'고 줄 서 있고, 전교생이 기립 박수를 친다. 우리가 아이돌 스타도 아닌데, 어디 가서 10대들한테 열광적인 환대를 받아 보겠냐"며 껄껄 웃었다.
임산은 역사를 가르치는 음악 선생님 같다. 5년째 이 콘서트를 이어오며 그도 얻은 것이 많다. 그는 2010년 한 고등학생에게 받은 이메일 내용을 소개했다. "경기도 한 고등학교의 학생회장이 보낸 이메일이었어요. '음악회에 자러 들어왔는데 아저씨 노래와 이야기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돼서 돈 주고 아저씨 음악회 티켓을 사서 꼭 보러 가고 싶다' 이런 내용이었어요. 그때 같이 갔던 음악가들한테 다 보여줬어요. 이 학생 이메일 때문에 감동받은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에요."
임산은 종종 강치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몇 달 전 찾아갔던 한 학교에서 여학생들은 "아저씨, 강치 닮았어요!"라며 깔깔 웃었다. 임산은 "내가 생각해도 닮은 것 같기는 하다"며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농담이 싫지 않다. 역으로 생각하면 학생들이 독도와 강치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훗날 목표는 전 세계 아름다운 섬나라를 찾아 자연보호를 주제로 강치 이야기를 자연스레 푸는 것이다. 그는 "인도양의 섬나라인 세이셸공화국에서 강치 콘서트를 열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성악가 임산은
경북대 예술대학 음악과를 졸업한 뒤 이탈리아로 건너가 밀라노 베르디 국립음악원과 밀라노 오페라 아카데미에서 공부했다. 이탈리아 'Tortona 국제음악콩쿠르' 성악 부문에서 우승한 실력파 성악가수이다. 2009년 클래식 앨범 '독도 아리아'와 2012년 싱글앨범 '보고 싶다 강치야'를 발매했다. 올 8월 해양수산부 '강치 홍보대사'로 위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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