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동아리는 한 시대 청춘의 관심을 반영한다. 민주주의가 화두였던 1980년대에는 대학 동아리가 사회 문제를 표출하는 통로였다. 민중가요를 작곡하고 부르는 노래패와 몸짓패, 풍물패 등 동아리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생겨났다.
2014년 가을, 요즘 대학 동아리는 어떤 모습일까? 이 시대 대학 동아리의 관심사는 크게 두 부류다. 취업 혹은 재미다.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 학생 운동이 시들해진 지 오래다. 특정 분야의 '취업'이 목표인 동아리는 20~30년 전 대학가에서 찾기 어려운 모습이다. 재미 자체가 목적인 특색있는 동아리도 많다. 세상 모든 것을 탐험하는 탐험 동아리, 캠퍼스에 농사짓는 동아리, 또 와인 소믈리에처럼 '치믈리에'를 양성하겠다며 치킨 애호가들이 모여 만든 '치킨 동아리'도 있다. 반대로 연극처럼 순수 예술을 탐구하는 동아리는 신입생이 부족해 존폐의 기로에 놓여 있다. 지금부터 2014년 대학 동아리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 대학가, 현실적인 취업 동아리가 강세
요즘 대학가에는 현실 지향적인 동아리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증권과 주식 투자, 기업 분석 동아리 등 현재의 활동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 동아리들은 넘치는 신입생을 면접을 거쳐 선택해야 할 정도다. 동아리 활동도 취업할 때 '스펙'이 되기 때문이다. 단순히 놀고, 즐기는 동아리 문화가 아니다. 기업 분석, 공모전 참가, 금융 자격증 따기처럼 동아리 활동 내용도 체계적이고 구체적이다.
하지만 취업 동아리를 향한 비판도 존재한다. 취업이라는 개인의 성취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최근 세월호 사고를 비롯한 굵직한 사회 문제에 대학생들이 좀처럼 목소리를 내지 않아서다. 영남대 행정학과 02학번인 주정희(30) 씨는 대학 시절 학생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주 씨는 "노동 운동하는 사람들을 현장에서 만났고, 파업을 하다가 다친 분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찾아가 이야기를 나눈 기억도 난다. 환경과 인문학, 법, 대북 관계 등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철학적인 고민을 많이 했다"며 "10년 전에도 '02학번이 학생 운동의 끝'이라며 우리 세대를 스스로 비판했지만 요즘에는 거의 모든 대학생들의 관심사가 취업에만 쏠리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 금융권 취업 목표 연합 동아리 DIS
DIS(Daegu Intensive Study of Finance)는 은행, 증권사 등 금융권 취업을 목표로 생겨난 연합 동아리로 대구경북 대학생들이 모여 만들었다. 대구경북 대학생 전체가 참여하는 금융 동아리가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한 대학생이 2012년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전공 공부를 하는 '스터디 그룹' 형식이었지만 2013년부터 몸집을 키워 동아리로 새롭게 출범했다. 얼마 전 6기 회원들을 뽑았고, 기수 별로 25~30명 정도가 6개월 간격으로 활동한다.
금융권 취업이라는 확실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규칙도 엄한 편이다. DIS 회장인 서원섭(24'영남대 경제금융학과 09학번) 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출석률이다. 매주 일요일 정기 모임에 다섯 번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강제 탈퇴시킨다. 서류와 면접 전형을 거쳐 신입생을 뽑는데 면접 때 보통 정원의 두 배수를 뽑는다"며 "서류에서는 금융 자격증 소지 여부나 본인의 관심도 등을 포괄적으로 보고 면접에서는 성실도와 열정을 중점적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동아리 역사는 짧지만 많은 회원이 금융권 취업에 성공했다. 서 씨는 "동아리를 만든 1기 회장은 증권사에 취업했고, 다른 회원들도 금융 공기업과 은행, 보험사 등에 취업했다. 지금은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앞으로 전국적인 동아리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모집 경쟁률 8:1, 경북대 '지식자본연구회'
동아리방, 과방을 연상하면 떠오르는 풍경이 있었다. 정체 모를 곡을 기타로 무한 반복하는 선배 한두 명이 '서식'하고 있는 퀴퀴한 냄새와 분위기. 경북대 경영학부 동아리인 '지식자본연구회' (이하 지자본)는 이 같은 편견을 깼다. 노란색 페인트 벽과 일자형 소파를 갖춘 동아리방은 웬만한 커피숍에 버금가는 인테리어를 자랑했다. 이 공간은 졸업한 동아리 선배들이 돈을 모아서 가구를 사고, 인테리어 비용을 대 세련된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지자본이 생겨난 것은 2000년. 이 시기는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대학생들의 주된 관심이 학생 운동에서 '취업'으로 전환됐던 시점이다. 동아리 설립 목적이 취업 그 자체는 아니었다. 남들 앞에서 발표하는 PT(프레젠테이션) 수업이 많은 경영학과의 특성상 발표 실력을 키우려고 학생들이 모인 것이 시작이었다. 지자본 회장인 이원일(23'경제통상학부 10학번) 씨는 "예전에 대구 지역 학생들이 'PT에 약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이렇게 생겨난 동아리를 240명이 넘는 회원들이 거쳐 갔고, 우리나라 100대 기업에 지자본 출신 선배가 한 명씩 다 있을 정도"라며 회원 명단을 내밀었다.
15년 역사의 이 동아리는 현재 21기 신입생을 뽑고 있다. 경쟁도 치열하다. 전공과 상관없이 회원을 뽑다 보니 한 기수당 8명을 뽑는 데 지난 학기에는 80명이 넘는 학생들이 몰려왔다. 모집은 서류와 면접 전형을 거친다. 기업 신입사원 채용에 맞먹을 정도로 신입생들의 열정도 뜨겁다. 면접 때 와이셔츠 속에 빨간 티를 입고 와 "이것이 나의 열정!"이라며 셔츠를 벗어젖힌 지원자도 있었고, 시키지도 않은 팔굽혀 펴기를 하거나, 인기 가수의 춤을 따라 추기도 했다. 김근우(23'경영학부 11학번) 씨는 "처음에 면접에서 떨어졌는데 6개월 뒤 다시 준비해서 지자본에 들어왔다. 처음엔 내 열정을 잘 보여주지 못해 떨어진 것 같다"며 머리를 긁적였다. 20기인 주하희(20) 씨가 "회사 면접이라 생각하고 진지하게 임했다. 주식 시장 변동 등 나름대로 예상 질문을 뽑아 외우면서 공부했는데 이런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자 옆에 있던 선배들은 "우리도 모르는 문젠데 신입생한테 어떻게 묻겠냐. 동아리 면접이다"며 껄껄 웃었다.
지자본의 주요 활동은 매주 목요일 모여서 기업 경영 전략을 분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공 공부와 회원 간 친목 도모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부산대와 부경대, 전북대와 협력해 매년 두 차례 경영 전략 학술 세미나를 연다. 각 학교가 한 기업을 정해 PT를 만들어 발표하고, 토론을 하는 식이다. 다른 학교와 교류하며 배우는 것도 많다. 지자본 회원들은 "부산대는 기업 분석을, 부경대는 프로모션을 잘한다"고 평가했다.
국제 교류 세미나에도 매년 참가한다. 일본 나고야대와 함께해 온 교류 세미나는 내년 2월이면 5회째를 맞이한다. 지자본 준비팀장인 이홍(24'경영학부 09학번) 씨는 "나고야대는 일본 대표 기업을, 우리는 한국 기업을 분석해 경영 전략을 제시하기 때문에 서로 몰랐던 것을 배운다. 나고야대 학생들이 우리 보고 'PT를 잘 한다'며 배울 게 많다고 칭찬했다"며 "아, 음료수를 맥주에 섞어 마시는 새 '음주 문화'를 일본에 소개했는데 깜짝 놀라더라"고 말했다.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동아리에서 '연애'가 빠지면 섭섭하다. 밤샘 작업을 하고, 남녀가 팀을 이뤄 종일 붙어 공부하다 보면 없던 정도 생기기 마련이어서 커플도 여럿 탄생했다. 지자본은 "우리는 취업 동아리가 아니다"고 말한다. 대신 동아리 활동을 하다 보니 취업이 잘된 것뿐이라고 설명한다. 회장 이원일 씨는 "우리가 졸업하면 각자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것"이라며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 졸업을 한 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이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지자본의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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