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자기만족? 삶의 기록? 왜 사람들은 셀카를 찍는가

1999년 5월 일본의 전자기기업체 교세라(Kyocera)는 세계 최초로 카메라가 달린 휴대전화 VP-210을 출시했다. 교세라 측이 언급한 이 카메라의 활용 예로 '상대방과 영상통화 하기'와 '비즈니스 현장을 실시간으로 사진을 찍어 전송하기' 정도였다. 이 휴대전화가 출시된 지 15년이 지난 지금, 휴대전화 속 카메라는 교세라가 말한 활용보다 훨씬 다양하게 쓰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셀카'라는 하나의 문화현상까지 만들어냈다.

사실 자신의 얼굴을 찍는 행위는 필름카메라 시절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지금의 셀카 문화는 그 방식과 의미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를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요소는 바로 '디지털기기'를 이용해 '인터넷 환경'에 사진을 공개한다는 점에 있다. 그 요소로 셀카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학계는 이처럼 최근 등장한 문화현상에 대해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사람들은 왜 셀카를 찍을까?"

◆삶이 아닌 욕망을 찍다

김모(27) 씨는 셀카를 찍을 때 대여섯 장을 찍은 뒤 그중 제일 잘 나온 컷 하나를 골라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올린다. 친구들과 셀카봉을 이용해 사진을 찍을 때도 마찬가지다. 친구들과 몇 컷 찍어보고 나서 사진을 확인한 뒤 모두가 '가장 잘 나온 것'으로 동의한 사진을 SNS에 올린다. 김 씨는 "SNS에 올리는 것은 남들도 보는 사진이다 보니 당연히 남들이 봐도 예쁘게 나온 사진을 올리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고 말했다.

셀카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김 씨처럼 셀카를 찍는 사람들이 셀카를 여러 컷 찍은 다음 그중 제일 잘 나온 컷을 올리는 데 주목했다. 스마트폰과 같은 디지털기기로 찍는 사진은 삭제가 쉽다 보니 내가 불만족스럽게 나온 사진을 미련없이 삭제할 수 있다. 이 행위는 결국 자신이 직접 찍은 얼굴이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 잘생겨 보이는 일종의 '왜곡현상'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왜곡은 자기만족감으로 이어지는데, 셀카를 찍는 행위는 이 '만족감'을 얻기 위한 행위로 볼 수도 있다. 지난 7월 24일 케이블 채널인 스토리온 TV의 '렛미인 시즌4'에 출연한 'SNS 얼짱 엄다희 씨'의 경우가 이 현상의 극단적인 예라 볼 수 있다. 엄 씨는 SNS 상에서는 '여신' 소리를 듣고 살았지만 실제로는 밖에 잘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으면서 셀카를 찍고 포토샵으로 고쳐 SNS에 올려 자기만족을 찾는 SNS 중독녀였다. 엄 씨의 경우처럼 자신이 연예인들처럼 잘생긴 사람이 되고 싶을 때 셀카를 통한 이미지 연출로 자신의 진짜 모습 대신 만들어진 모습을 즐기고 공유한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에 대해 진중권 교수(동양대 교양학부)는 그의 책 '크로스'에서 "셀카의 얼굴과 세면대 거울 속 얼굴 사이에는 '환상'과 '진실' 사이의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는데 테크놀로지가 이 간극을 메워버렸다"며 "디지털 시대의 자본주의 대중은 제 얼굴을 더 아름답게 만들어 그 극한에서 스스로 스타가 된다"고 정리한 바 있다.

◆개인 기록의 수단이 변했다

영남대 사이버감성연구소 김지영 연구원은 '개인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셀카를 바라보고 있다. 카메라가 내장된 휴대전화가 보편적으로 공급이 되고 디지털카메라가 소형화, 대중화되면서 셀카는 자신이 현재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기록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글로 쓰던 일기를 사진으로 대체한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김 연구원은 "소형 디지털 촬영기기들 때문에 개인이 찍을 수 있는 사진의 양이 늘어났다"며 "이런 사진들이 모이면 결국 사진 이미지로 개인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SNS의 등장으로 셀카는 더욱 대중들의 놀이로 자리잡았다. 싸이월드부터 카카오톡까지 자신을 소개하는 데 사진은 필수로 요구되는 항목이며 대부분 남이 찍어준 사진보다는 셀카를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한다. 또 대부분의 이성 찾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인연을 찾는 사람들의 판단 기준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프로필 사진 대부분은 남이 찍어준 사진이 아니라 셀카 사진이다. 김 연구원은 "셀카를 SNS에 올리고 몇몇 개인들의 셀카가 인터넷 상에 화제가 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개인들에게 셀카는 자신을 표현하고 알리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고 말했다.

◆세상에 내 목소리를 낼 때도 셀카를

올해 여름 중국 여성들 사이에서는 '겨털 셀카 찍기'가 유행처럼 번졌다. 말 그대로 겨드랑이 털을 드러낸 채 셀카를 찍는 것을 말하는데 지난 8월 1일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메일'이 "중국의 젊은 여성들이 '소녀들의 겨드랑이 털 뽑지 않기'로 불리는 이벤트 참가를 위해 겨드랑이 털 셀카를 찍어 웨이보에 올리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알려졌다. 자못 엽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이 셀카 이벤트에 대해 주최 측은 "'털을 정돈해야 한다'는 서양에서 건너온 사회적 규범과 금기 대신 동양 여성의 자연미를 추구하자"는 취지에서 열었다고 했다.

이처럼 셀카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공개하고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한 도구로도 이용될 수 있다. 중국 여성들의 겨털 셀카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했던 젊은 무슬림들의 하지 셀카도 자신이 무슬림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공개하는 하나의 도구인 것이다. 여성학에서는 셀카가 여성들의 자신감을 찾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못생기고, 뚱뚱하고, 공격적인 포즈를 취하는 셀카를 찍는 여성들에 주목하는데 날씬함, 섹시함, 귀여움 등을 원하는 남성적 시각에 정면으로 맞서 "난 이대로 멋져"라며 스스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라는 것이다. 여성학계는 이런 행위가 여성들의 자신감을 높이는 데 큰 효과를 발휘한다고 보고 있다. 이희영 교수(대구대 사회학과)는 "중요한 것은 셀카를 찍는 여성 자신이 얼마나 여성적 주체성을 가지느냐는 것"이라며 "과거 카메라의 시선이 여성을 '성적 욕구의 대상' 등으로 보는 남성적 시선이었다면 셀카는 여성 자신의 시선으로 여성의 주체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화섭 기자 lhssk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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